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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올라탄 한국경제…반도체 호황 넘어 ‘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을까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9.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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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수출·설비투자 동반 성장, 한국경제 성장 전망도 상향
  • HBM·제조업 경쟁력은 강점, AI 활용이 자동차·조선·로봇·서비스업까지 확산될지가 관건
  • 성장의 과실이 고용·소비·중소기업으로 이어져야, ‘AI 특수’를 ‘AI 경제’로 전환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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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인공지능(AI)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경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그 흐름의 중심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한국경제가 세계 경제의 성장기에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를 앞세워 성장했다면 AI 시대에는 반도체와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높인 것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5%에서 3.2%로 높였다. 2027년 전망도 1.7%에서 2.2%로 상향했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와 가격을 끌어올리고 수출과 설비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2.6%, 내년을 1.9%로 전망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7월 올해 성장률 전망을 2.6%로 상향했다. 전망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최근 한국경제의 성장세를 바라보는 국내외 기관의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AI’와 ‘반도체’다.


AI가 불러온 반도체 호황…수출의 지형을 바꾸다


AI가 한국경제에 가져온 변화는 수출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올해 1~8월 반도체 수출은 2810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9.6% 증가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41%까지 높아졌다.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면서 AI 연산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 결과다. 특히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과정에 필요한 HBM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한국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 초까지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7094억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사상 최대 수출액인 7093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AI가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 하드웨어 공급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나타난 변화다.


이러한 흐름은 투자로도 이어지고 있다.


KDI는 올해 설비투자가 7.9%, 내년에는 7.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늘어나는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시설과 장비 투자를 확대하면서 국내 설비투자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AI 효과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전기장비와 기계장비, 금속가공 등 연관 제조업에서도 생산과 투자가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반도체 경기 호조와 그 파급효과가 국내 성장세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진짜 경쟁력은 ‘AI를 만드는 산업’에 있다


AI 시대 한국경제를 바라볼 때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AI 서비스만을 놓고 경쟁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AI가 작동하려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냉각시스템, 서버, 통신장비 등 거대한 물리적 기반이 필요하다. AI가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이동할수록 로봇과 자동차, 공장, 물류시스템과 같은 제조 기술의 중요성도 커진다.


한국이 가진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배터리, 전기·전자, 로봇, 기계산업의 경쟁력이 AI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AI가 로봇이나 자동차, 공장 설비 등 현실 세계의 기계와 결합하는 ‘피지컬 AI’가 확산될 경우 한국의 제조업 기반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AI가 공장의 생산공정을 스스로 최적화하고, 로봇이 사람과 협업하며, 자동차가 주변 환경을 판단하고, 조선소가 설계와 생산·안전관리까지 AI로 연결하는 단계로 발전한다면 AI의 경제적 효과는 반도체 수출을 넘어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결국 한국경제에 더 중요한 질문은 ‘AI 반도체를 얼마나 많이 팔 것인가’에서 ‘AI를 이용해 기존 산업을 얼마나 바꿀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한국경제의 체질도 달라진다


AI가 산업 현장에 제대로 확산될 경우 한국경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생산성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도 있다.


KDI가 지난 7월 발표한 ‘AI 확산의 거시경제적 영향’ 연구에서는 AI와 관련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국내 기업에서 직원 1인당 매출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라 생산성 개선 효과는 약 5~20% 수준으로 추정됐다.


KDI는 AI가 향후 10년간 한국의 총요소생산성(TFP)을 누적 약 2.3%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과 자본을 계속 투입해 성장하기는 어렵다. 같은 인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성 향상이 경제성장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완화할 수 있는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생산성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데이터 활용 능력과 업무 방식, 인력 재교육, 조직문화가 함께 변해야 실제 경제적 효과로 연결될 수 있다.


반도체는 뜨겁지만 내수와 고용의 온도는 다르다


현재의 AI 호황을 한국경제 전체의 호황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른 측면도 있다.


성장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와 일부 수출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수출액과 생산 규모가 크지만 생산 증가에 비례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아니다. 반도체 수출이 크게 증가하더라도 그 효과가 곧바로 고용과 가계소득,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KDI는 높은 성장률에도 민간소비 회복 속도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건설업과 일부 비반도체 제조업의 부진도 이어지고 있어 반도체가 이끄는 경기와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AI가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으며 이 가운데 26만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정보서비스와 출판,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서비스 등에서 청년고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일시에 대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이고 비교적 표준화된 업무부터 자동화되면서 청년들이 경력을 시작하던 입문 단계의 업무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경제성장을 성장률과 수출액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기업의 AI에서 ‘모두의 AI’로


한국경제가 AI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문턱은 기업 간 격차이다.


대기업은 AI 인프라와 전문인력, 데이터에 투자할 자본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AI를 실제 업무에 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격차가 커질 경우 AI는 전체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차이를 더욱 벌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AI 시대의 산업정책은 첨단 AI 모델 개발이나 반도체 투자에만 머물기보다 중소·중견기업이 AI를 생산과 영업, 물류, 품질관리, 에너지 절감 등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AI의 경제적 효과가 일부 기업의 이익에서 끝나지 않고 산업 생태계 전체로 퍼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AI 호황은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의존이다


AI가 한국경제에 가져온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 존재한다.


현재 한국의 수출과 성장률이 글로벌 AI 투자 확대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세계 AI 투자 사이클이 꺾일 경우 한국경제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하거나 AI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경우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각국이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면서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 유럽 등이 생산시설과 기술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통상정책과 공급망 재편, 중동 정세와 에너지 가격 등 외부 변수까지 더해지면 AI 반도체 호황만으로 한국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호황기에 오히려 산업 구조를 넓혀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AI 특수’에서 ‘AI 경제’로


한국경제는 AI 시대의 출발선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고, 자동차와 조선, 배터리, 전자, 기계 등 AI와 결합할 수 있는 제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가 당장 수출과 설비투자를 끌어올리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성장은 아직 ‘AI 경제’라기보다 ‘AI가 만들어낸 반도체 특수’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앞으로의 한국경제를 결정할 것은 반도체 호황 자체보다 그 다음 단계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투자가 자동차와 조선, 로봇, 바이오, 금융, 유통, 콘텐츠와 중소 제조업으로 얼마나 빠르게 퍼지는지, AI가 실제 현장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해진다.


동시에 AI로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업무를 대신할 새로운 직무를 만들고, 청년과 기존 근로자가 변화된 노동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직업훈련 체계를 바꾸는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세계경제가 AI를 중심으로 다시 짜이는 과정에서 한국은 분명 기회를 잡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AI 호황에 올라타는 것을 넘어 AI를 한국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바꾸는 일이다.


반도체가 AI 시대 한국경제의 문을 열었다면, 앞으로의 성장은 AI가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소기업과 노동시장까지 얼마나 깊고 넓게 스며드느냐에 달려 있다. ‘AI 특수’를 ‘AI 경제’로 바꾸는 것, 그것이 다음 한국경제의 성장 공식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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