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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휴식노트 ⑥]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오래도록 마음을 지키는 힘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10.17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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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 국화 공원의 LOVE 상징 조형물 [사진=EET뉴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때로는 사랑 때문에 행복해하고 아파한다. 사랑은 삶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 가운데 하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어린 시절에는 사랑이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특별하게 여기며,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충분해도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관계의 숫자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연결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그 연결을 오래도록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설렘이나 애정의 감정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조금 더 깊은 의미의 사랑 말이다.


사랑은 흔히 감정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고,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워진다. 그러나 감정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아무리 뜨거웠던 마음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때로는 서운함이나 실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순간 사랑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단순히 우연히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능력으로 바라보았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빠지는 경험만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책임 있게 관계를 이어가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가보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실천하는가에 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주기를 원한다. 상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서운해지고,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다르다.


사랑은 상대를 나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나와 다른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를 틀렸다고 판단하기보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된 관계를 돌아보면 사랑은 특별한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묻는 안부처럼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관계를 지탱한다.


반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에는 무관심할 수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고,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친밀하다는 사실이 언제나 이해와 배려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는 쉽게 익숙함에 기대곤 한다. 낯선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추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는 날카로운 말을 건네기도 한다. 상대가 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힘은 익숙함 자체가 아니라 익숙한 사람을 여전히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사랑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때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뒤로 미룬다. 상대가 행복하다면 나는 조금 참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하고 싶은 말을 삼키기도 한다. 물론 사랑에는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만 계속 참고 희생해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안에서 사랑은 점차 부담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사랑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사라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각자의 생각과 삶을 존중하고, 필요할 때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하는 사이에도 지켜야 할 경계가 있다.


자신을 존중하는 일 역시 사랑의 중요한 부분이다. 스스로를 늘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필요한 휴식을 허락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에게도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건넬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한 감정만을 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실망하고 다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느냐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관계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반복해서 존중받지 못하거나 상처만 쌓이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선택이 필요할 수 있다. 때로는 떠나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을 계속 아프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받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경험은 삶에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은 상대가 나를 얼마나 만족시켜 주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사랑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거창한 약속이나 특별한 선물에만 담겨 있지 않다. 힘든 날에도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상대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 익숙한 관계 안에서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처럼 일상에서 반복되는 태도 속에 자리한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한 가지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건네보자.


'나는 다른 사람을 아끼는 만큼 내 마음도 소중하게 돌보고 있는가.'


사랑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때로 서툴고, 마음과 다른 말을 하며, 소중한 사람에게조차 실수한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며 매일 새롭게 배워가는 삶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줄 때, 비로소 마음은 깊은 휴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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