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3차 오일쇼크'라는 현실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며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 선을 위협하자,
정부가 결국 29년 동안 사장되었던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첫 회귀, 전시 상황 준하는 초강수
정부가 이번에 검토 중인 최고가격제는 우리 경제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국은 지난 1997년 이후 시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가 자유화를 전면 시행하며, 정부의 가격 개입을 최소화해 왔다.
하지만 29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다시 시장의 핸들을 직접 잡으려 하는 것은 현재의 고유가 상황을 시장 자율에 맡길 수 없는, ‘경제적 전시 상황’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2조와 석유사업법 제23조에 근거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정유사와 주유소는 정부가 고시한 상한가 이상으로 기름을 팔 수 없게 된다.
실제로 가격 통제가 공급 부족을 초래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미국의 석유 가격 통제 정책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석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부의 의도와 정반대였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묶이자 정유사들은 생산과 공급을 줄였고,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다. 그 결과 미국 전역의 주유소 앞에는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이 등장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차량 번호판 끝자리로 주유 요일을 제한하는 ‘홀짝제’까지 시행될 정도였다.
경제학자들이 지금도 이 사례를 “가격 통제가 만든 대표적인 공급 위기”로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가격이 억눌릴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급은 위축되고, 결국 그 댓가는 소비자가 더 큰 불편으로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도미노 막는 ‘방화벽’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고유가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는 강력한 ‘단기 처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 상승의 입구에 해당하는 석유 제품은 물류비와 제조 원가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므로 유가를 강제로 묶어두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입구에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취약 계층들의 즉각적인 보호가 가능해진다. 특히나 유가 상승에 생계가 직결된 화물 운송업자와 자영업자들에게는, 세금 감면보다 훨씬 강력하고 즉각적인 비용 절감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국민은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가 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다’는 강력한 신호는 시장에 퍼진 인플레이션 공포를 잠재우는 심리적 방어선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공급 절벽’과 ‘암시장’, 시장 왜곡의 부메랑
그러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는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수요는 늘지만, 공급은 줄어드는 것이 시장의 순리이다.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지속되면 정유사는
출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오일쇼크 때 경험했던 ‘주유소 줄서기’나
‘배급제’를 초래할 위험성도 크다.”
실제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뒤로 웃돈을 얹어 거래하는 암시장이 형성되거나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왜곡되는 등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막대한 재정 부담과 연착륙 전략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와 함께 ‘비축유 방출’과 ‘유류세 추가 인하’를 병행하며, 민간 사업자의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이 모든 것이 국가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은 단순한 상품 가격이 아니다. 그것은 물류를 움직이고, 공장을 돌리고,
가계의 장바구니를 흔드는 경제의 심장이다.
정부가 그 가격을 직접 묶는다는 것은 결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시계의 태엽을 손으로 잡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 태엽이 시간을 멈출지,
아니면 더 거칠게 튀어 오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결국 석유 최고가격제는 서민 경제를 구제하는 강력한 ‘진통제’인 동시에, 장기화 시 시장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넘겨왔을까. 가격 통제와 시장 자유 사이에서 각국이 선택했던 길을 다음 기사에서 한 번 살펴볼 것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민생의 숨통을 틔워줄 구원투수가 될지
아니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독배가 될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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