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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8.15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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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화문을 수놓은 태극기 물결.jpg
▲ 광화문 앞 육조대로에서 물결치는 해방의 거대한  기쁨. . Photo by AI]

 

 

그 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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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윤재훈 시인

 

매년 광복절이 찾아오면 언어가 유난히 뜨겁게 살아나는 시가 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육체까지 악기로 만들어 바치겠다는, 극단적인 환희의 상상력까지 밀고 올라간 시.

시인은 일제강점기의 작가이자 언론인, 영화인이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을 작품 속에 강하게 드러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삼각산’과 ‘한강’은 단순한 산과 강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을 품고 있는 자연이면서 동시에 오랜 조선의 역사를 지켜본 존재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해방되는 순간, 억눌려 있던 국토 자체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일까?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첫 번째 절정이다.

‘인경(人磬)’, 시인은 종로의 종을 손으로 치겠다고 하지 않았다.

머리로 들이받겠다고 했다.

두개골이 깨져도 좋다고 했다.

잔혹할 정도로 강렬한 표현이다.  


2연에서는 한단계 더 나아간다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육조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육조 앞 넓은 길’, 광화문 앞 세종대로가 떠오른다. 지금도 친일에 앞장섰던 조선과 동아일보의 벽에서 거대한 디지털 옥외광고판이 번쩍거리는, 대한민국의 심장부 거리이다. 특히 조선시대 육조 관청이 늘어서 있던 국가의 중심 공간이다.


시인은 놀랍게도 훗날 해방을 맞이한 흰옷의 백성들이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우고 울고 뛰는 장면을 미리 상상한 것은 아닐까?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1연에서는 머리로 종을 울렸다.

2연에서는 아예 자기 몸의 가죽으로 북을 만들겠다고 했다.


종 → 몸 → 북 → 행렬


시인의 육체는 점점 사라지고, 소리만 남는다.

마지막은 더욱 비장하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심상은 어쩌면 ‘기쁨’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일제강점기 저항시를 떠올리면 슬픔이나 한, 고통, 결의를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이 오면」은 독특하다.

이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분노보다 환희에 가깝다.

춤추고, 용솟음치고, 울고, 뛰고, 뒹굴고, 종을 치고, 북까지 친다.

그런데 그 환희가 너무 커서 인간의 육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정작 시인은 ‘그날’을 보지 못하고 1936년 9월 16일,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난다.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날’을 9년 앞둔 세상이었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리고 9년 뒤, 정말로 ‘그날’이 왔다.

시인에게 ‘그날’은 미래였지만, 우리에게는 과거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기 목숨보다 간절하게 기다렸던 ‘그날’, 그 이후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었는가. 


“과연 친일을 청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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