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니프로강의 달밤’ 한 점만 어두운 전시장에 걸어 달빛 효과 극대화
- 캔버스 뒤 램프 확인했다는 일화까지, 빛과 색채 연구가 만든 독특한 표현
- 해상 여행과 안료 변화로 처음보다 어두워져, 현재 러시아미술관 소장
188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전시장. 어둠 속에 그림 한 점이 걸렸다. 구름 사이로 나온 달이 강물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빛이 너무도 선명해 일부 관람객은 그림 뒤에 램프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 화가 아르히프 쿠인지(Arkhip Kuindzhi)가 그린 ‘드니프로강의 달밤(Moonlit Night on the Dnieper)’에 얽힌 이야기다.
예술과 역사 콘텐츠를 소개하는 제임스 루카스(James Lucas)는 2일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이 작품을 소개하며 “이것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관람객들이 그림 속 빛을 믿기 어려워할 정도였다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
쿠인지가 1880년 완성한 ‘드니프로강의 달밤’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림의 구성은 단순하다. 짙은 구름 사이로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아래로 드니프로강이 흐른다. 주변의 땅과 하늘은 대부분 어둠에 잠겨 있지만 달빛이 닿은 강물은 녹색과 은빛이 뒤섞인 색으로 밝게 빛난다. 강변의 작은 집들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쿠인지는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이면서 그림을 거는 방식까지 세심하게 연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가장려협회 전시장에 다른 작품을 함께 전시하지 않고 ‘드니프로강의 달밤’ 한 점만 공개했다. 창문을 가려 외부 빛을 차단한 뒤 조명을 작품에 집중시켜 그림 속 달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당시로서는 한 작품만을 위한 전시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그림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시장에는 긴 줄이 생겼고,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해 여러 차례 찾아오는 관람객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강물 위에 번지는 달빛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워낙 강렬해 실제 조명이 그림 뒤에서 비추고 있다고 생각해 캔버스 뒤를 살펴봤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쿠인지의 빛 표현은 단순한 회화적 감각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빛과 색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물감과 빛이 사람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연구했다. 주기율표로 잘 알려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등이 참여한 모임에도 참석하며 색과 빛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니프로강의 달밤’은 전시되기 전 이미 러시아 황실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에게 판매된 상태였다. 대공은 쿠인지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본 뒤 5천 루블에 구입했다.
작품을 아꼈던 대공은 이후 긴 해상 여행에도 이 그림을 가져갔다. 하지만 바다 위의 환경은 유화 작품 보존에 적합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친 그림에는 손상이 발생했고 쿠인지가 직접 복원 작업을 했지만 원래 상태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도 이후 색채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인지가 사용한 역청(bitumen)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두워질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재료다. 해상 여행에서 받은 영향과 안료의 변화가 겹치면서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1880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보다 어두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오늘날 미술관에서 만나는 ‘드니프로강의 달밤’과 19세기 관람객들이 처음 마주했던 그림 사이에는 색감과 밝기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작품의 중심인 ‘빛’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쿠인지는 달이나 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면 대부분을 어둠으로 채운 뒤 제한된 부분에 빛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실제 전시장까지 어둡게 연출하면서 관람객이 그림 속 달빛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했다.
140여 년 전 사람들이 그림 뒤에서 램프를 찾았다는 일화는 당시 ‘드니프로강의 달밤’이 관람객에게 얼마나 낯설고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한밤의 강 위에 떨어진 달빛을 캔버스에 담은 한 점의 풍경화는 그렇게 쿠인지의 이름과 함께 러시아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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