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 이후 누구보다 굳건한 연대를 보여온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다시 과거의 기억 앞에 멈춰 섰다. 최고 국가훈장을 둘러싼 외교적 충돌은 단순한 의전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현재와 역사라는 과거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자신에게 수여됐던 폴란드 최고 훈장인 '백수리 훈장'을 반납했다. 폴란드의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해당 훈장을 박탈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대응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훈장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언젠가 우크라이나 국민이 받아야 할 존중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건의 직접적인 계기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특수작전부대 일부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의 이름을 부여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UPA는 독립을 위해 나치 독일과 소련에 맞서 싸운 저항세력으로 기억된다. 전쟁 속에서 국가를 잃었던 민족이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역사적 상징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국가 정체성과 저항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에게 같은 이름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UPA는 1940년대 볼히니아와 동부 갈리치아 지역에서 수많은 폴란드 민간인을 학살한 조직으로 기억된다. 폴란드는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있으며,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가 영웅으로 기리는 인물이 폴란드에서는 전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양국이 공유하는 역사가 결코 하나의 서사로 정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러한 갈등이 양국 관계가 가장 가까워졌다고 평가받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였고, 군사·외교적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왔다. 유럽 내에서 가장 강력한 우크라이나 지원국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폴란드 사회 내부에는 피로감도 함께 쌓였다. 난민 문제와 경제적 부담, 농산물 수입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시선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역사 문제는 그동안 잠시 뒤로 미뤄져 있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유럽 언론은 이번 사태를 '역사가 돌아온 순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공동의 적이 존재할 때는 봉합됐던 기억의 균열이 전쟁 장기화 속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양국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의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총리는 폴란드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또 다른 잘못된 대응으로 문제를 키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 총리 역시 "전선은 다른 곳에 있다"며 양국 지도자들에게 감정적 대응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 갈등은 결국 푸틴을 기쁘게 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쪽에는 독립과 저항의 역사로 기억되는 집단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가족과 공동체를 잃은 학살의 기억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은 같은 인물을 영웅으로도, 가해자로도 만들었다.
그럼에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현실 앞에서 협력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웃이다. 러시아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양국은 안보와 재건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전쟁은 종종 사람들을 하나로 묶지만, 역사는 때로 그 결속의 깊이를 시험한다. 이번 훈장 반납 논란은 두 나라가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군사적 동맹을 넘어 서로의 기억과 상처를 이해하려는 더 긴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포성이 계속되는 유럽의 동쪽에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지금 '어떻게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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