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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지질의 시간이 만나는 곳, 북아일랜드 자이언츠 코즈웨이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8.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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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만 개의 현무암 기둥으로 이루어진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useway) [사진=Adrien Olichon]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북아일랜드 앤트림 해안. 이곳에는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돌기둥을 정교하게 깎아 바다를 향해 이어 붙여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수만 개의 현무암 기둥으로 이루어진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useway)는 전설 속 거인의 길이자, 수천만 년 전 지구의 격렬한 화산 활동이 남긴 자연의 기록이다.


자이언츠 코즈웨이는 1986년 북아일랜드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이곳에는 약 4만 개에 이르는 거대한 현무암 기둥이 펼쳐져 있으며, 대부분 육각형이지만 네 개에서 여덟 개의 면을 가진 기둥들도 섞여 있다. 이 독특한 풍경은 약 5000만~6000만 년 전 북대서양 지역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곳을 처음 마주한 여행자에게는 과학보다 전설이 먼저 다가온다.


아일랜드 민담에 따르면 거인 핀 맥쿨(Finn McCool)은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에 사는 경쟁자 베넌도너(Benandonner)와 맞서기 위해 돌길을 만들었다. 거대한 돌기둥이 북아일랜드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 실제로 스코틀랜드까지 길을 놓으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전설은 여기서 더욱 흥미로워진다. 핀 맥쿨이 스코틀랜드의 거인을 만나려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베넌도너를 보고 도망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내의 기지로 아기처럼 변장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베넌도너는 아기의 크기만 보고 그의 아버지는 얼마나 거대할지를 상상하며 스코틀랜드로 달아났고, 뒤쫓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길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이언츠 코즈웨이의 끊어진 듯한 돌길은 바로 이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과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전설 못지않게 극적이다.


아주 오래전 이 지역에서 거대한 화산 활동이 일어나 용암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용암이 서서히 식으면서 수축했고, 내부에 규칙적인 균열이 생겼다. 그 결과 마치 장인이 하나하나 다듬은 것 같은 다각형의 현무암 기둥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침식이 이어지면서 주변의 암석은 깎여 나가고, 단단한 현무암 기둥이 오늘날과 같은 장관을 드러냈다.


자이언츠 코즈웨이가 단순히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질학적 장소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용암층과 절벽, 규칙적인 주상절리 구조가 북대서양 지역의 고대 화산 활동과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300여 년 동안 지질학자들이 이곳을 연구하면서 지구과학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거대한 자연의 이야기가 북아일랜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 스태파섬(Staffa)의 핑갈의 동굴(Fingal’s Cave)에서도 자이언츠 코즈웨이와 닮은 육각형 현무암 기둥을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나라의 해안에 떨어져 있지만, 이 독특한 지형들은 오래전 북대서양 일대에서 일어난 거대한 화산 활동과 연결된 지질학적 역사의 일부로 이해된다. 전설 속 거인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탄생한 것도, 어쩌면 서로 마주 보는 두 해안의 놀라운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인의 길을 직접 걷다


자이언츠 코즈웨이를 찾는 여행의 매력은 단순히 전망대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데 있지 않다. 해안으로 내려가면 여행자는 실제로 거대한 현무암 기둥 위를 걸을 수 있다.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진 돌기둥과 바다를 향해 뻗은 암석, 그리고 절벽 위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같은 장소에서도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현지 관리를 맡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자이언츠 코즈웨이 안내 페이지에 따르면, 방문객들은 돌기둥으로 향하는 비교적 짧은 블루 트레일뿐 아니라 해안 절벽과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레드·그린·옐로 트레일 등을 걸을 수 있다. 특히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코즈웨이 해안은 현무암 기둥 자체와는 또 다른 규모의 감동을 선사한다.


여행자라면 날씨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풍경도 기대해볼 만하다.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검은 현무암의 기하학적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밀려오는 날에는 대서양의 거친 바다와 어우러져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북아일랜드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지만, 자이언츠 코즈웨이에서는 그 자체가 풍경의 일부가 된다.


40개의 기둥이 아니라, 4만 개의 시간


자이언츠 코즈웨이를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기둥의 숫자가 아니라 그 놀라운 규칙성이다. 자연이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는지 쉽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이 여행의 진짜 의미가 시작된다. 전설은 거인이 돌길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과학은 용암이 식고 수축하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수천만 년의 시간을 연구한 과학의 결론이다.


하지만 자이언츠 코즈웨이 앞에 서면 두 이야기는 서로 충돌하기보다 묘하게 공존한다. 여행자는 육각형 현무암 기둥 위를 걸으며 지구의 격렬했던 과거를 상상하는 동시에,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까지 길을 놓으려 했다는 거인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1986년 북아일랜드 최초의 세계유산이 된 자이언츠 코즈웨이는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를 불러들이고 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뛰어난 자연경관과 지질학적 가치,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거인의 전설이 한곳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의 거친 해안 끝에서 만나는 이 돌기둥들은 결국 여행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곳은 과연 거인이 만든 길일까, 아니면 지구가 수천만 년에 걸쳐 완성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일까.


어느 쪽을 믿든 상관없다. 자이언츠 코즈웨이에서는 과학적 설명을 알고 난 뒤에도 전설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두 이야기가 겹쳐질 때, 북대서양 끝의 이 특별한 풍경은 더욱 깊고 오래 기억될 여행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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