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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바다를 지키던 눈으로, 국토의 물길과 옛길을 걷다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9.0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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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지켜야만 강토가 있고, 강토를 지켜야만 조국이 있다.”


해군가에 흐르는 이 한 구절을 가슴에 품고 36년 동안 바다에서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제복과 군모 대신 가벼운 옷을 입고, 거친 군함 대신 대중교통과 두 발에 의지해 제가 목숨 바쳐 지켜온 조국의 땅과 물길을 다시 밟고 있습니다.

군인의 임무가 바다를 지키는 일이었다면, 지금 제가 걷는 길은 국토의 기억을 지키는 일입니다. ‘관군에서 의병으로’라는 별칭처럼, 이제는 인문 여행가의 눈과 역사 지리학적 시선으로 우리 땅 곳곳에 남아 있는 이야기와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인생의 오랜 동반자인 아내와 발걸음을 맞춰 전국의 길과 구간을 함께 걷습니다. 단순히 완주라는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하나의 길을 걸으며 서로 다른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실천하는 도보 순례의 참된 즐거움입니다.

걷는 길에서는 익숙하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말과 생활의 흔적도 다시 바라봅니다. 외래어나 행정 편의적인 표현 대신 ‘맞뚜레’, ‘줄차’처럼 우리 삶 속에 스며 있던 정겨운 이름을 찾아 기록하고자 합니다. 정해진 결론을 전하기보다, 직접 발로 걸으며 만난 국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오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길을 걸을수록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선조들이 오가던 옛길과 마을의 흔적을 찾아 나서면서도, 내가 걷는 길은 과연 온전히 옛길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오늘의 철길과 아스팔트,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둘레길 역시 우리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길입니다. 과거의 흔적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어지는 국토의 모습을 함께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토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나누고 이어갈 것인가도 쉽지 않은 고민입니다. 태백과 평창은 남한강의 발원지이자 대관령과 태백산을 품은 고장입니다. 구례와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삼척은 태백 탄광의 역사와 동해의 바다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산과 강, 바다로 이어진 삶의 공간을 행정구역만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저는 단순히 걷는 사람이 아니라, 국토의 숨결을 글과 지도에 담아내는 여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수많은 선학들의 기록에서 길을 배우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하며 우리 땅이 품은 시간을 기록하겠습니다.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는 옛것과 새것, 자연과 사람,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국토 순례의 기록입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우리 땅의 길 위를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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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무주1


어린 시절 기억으로 첩첩산중의 대명사로 등장하던 곳이 삼수갑산과 무주 구천동이다. 그만큼 무주는 오래전부터 ‘깊은 산골’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무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도 덕유산과 구천동이다.

무주의 전략적 위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은 ‘주계고성’이다. 금강 상류를 내려다보는 이 성곽은 삼국의 세력이 충돌하던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주변에서는 신라가 이 지역까지 진출했던 흔적도 확인된다. 무주 남부 일대로 내려가면 가야계 봉화와 산성 유적이 확인되는데, 이는 무주가 가야와 신라가 국경을 형성하며 경쟁했던 역사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무주군 관광 안내를 살펴보면 대표적인 볼거리는 14곳으로 정리되어 있다.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무주가 새롭게 자랑하는 반딧불이와 예부터 있던 적상산성과 사고지가 있다. 자연적으로는 덕유산이, 역사적으로는 적상산이 무주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이야기, 구천동 33경과 내구천동

 

첫 계획은 아내가 원한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에 오르는 것이었다. 해발 1,614m의 향적봉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자 백두대간 척추이며, 무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 나의 여행 목적과도 잘 맞았다. 하지만 군내버스는 하루 5대뿐이고, 리조트 방향 버스는 13시에 출발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주민은 리조트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야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무주리조트까지 갈 것으로 생각한 직행버스는 하루 8대가 있고,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 14시 버스를 탔다. 읍내를 벗어나자 천연기념물인 오산리 구상화강편마암 지역을 지나갔다. 무주에는 세 곳의 천연기념물이 있는데, 나머지는 설천면 삼공리 반송, 그리고 무주 일원의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다. 관광지 직행버스 버스는 리조트까지 갈 줄 알았는데, 배방마을에 내려준 뒤 구천동 방향으로 떠났다. 

배방마을은 무주리조트 입구, 설천면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다. 배방(培芳)은 지형이 배의 형국처럼 생겼고, ‘작은 언덕배기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예부터 임실면과 적상면을 넘나드는 검령과 치마재 길목에 있어 주막이 발달했다. 1988년 스키장이 문을 열면서 현대식 주막이 들어섰고, 지금은 설천면에서도 가장 번화한 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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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33경 중 제15경 월하탄

  

원래 계획은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에 오른 뒤, 시간이 남으면 구천동 어사길까지 걸어보는 것이었다. 시간을 아끼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뜻밖에도 곤돌라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계획을 바꾸어 구천동으로 향했다. 거리는 약 3㎞, 택시비는 1만 원이었다.

구천동(九千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기행문인 「덕유산향적봉기(德裕山香積峰記)」에 등장하는 구천둔(九千屯)에서 유래했다. 구천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던 곳이라는 의미다. 백련사 왕복버스 운전자는 이곳에서 스님들이 무술을 연마했고, 그래서 오늘날 태권도원이 무주에 자리 잡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구천동이 오래전부터 수행과 무예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또 다른 유래로는 “구천 명의 생불이 나올 정도로 깊고 그윽한 계곡”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구천동에 내려오는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의 부처 이름을 함께 품은 지명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구천동은 크게 외구천동과 내구천동으로 나뉜다. 외구천동은 제1경 라제통문에서 제14경 수경대까지이고, 제15경 월하탄부터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에 이르는 구간이 내구천동이다. 덕유산리조트 입구인 배방마을이 중간 지점이다. 제15경 월하탄에서 약 6㎞를 오르면 제32경 백련사에 이르고, 백련사에서 다시 약 2㎞를 올라가면 제33경 향적봉이다.

구천동 어사길은 덕유산리조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던 옛길이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구천동을 찾아 민정을 살피고 억울한 백성들을 구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길로써 과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던 소통의 통로라고 한다. 백련사에서 내려오는 길의 안내문에는 박문수가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한 뒤 조정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머물렀다는 전설도 소개되어 있다.

탐방안내소 근무자에게 어느 길이 좋은지 물었다. 그는 어사길은 작은 내를 따라가는 길이고, 걷는 길은 큰 내를 따라가는 길이라며, 경치는 어사길이 좋고 내려올 때는 걷는 길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 보니 설명과 조금 달랐다. 작은 내와 큰 내의 차이가 아니라, 작은 길과 큰 길의 차이였다. 


구천동 계곡 오른쪽으로 난, 옛길을 정비한 작은 길이 어사길이다. 계곡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과거 차량이 다니던 길을, 걷는 전용길로 만든 것이다. 지금도 백련사 왕복버스와 관리 차량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나는 어사길은 전혀 다른 데로 가는 길인 줄 알았고, 백련사까지 버스가 다닌다는 것도 몰랐다.

구천동 어사길은 탐방안내소에서 백련사까지 총연장 4.9㎞이며, 제16경 인월담부터 제32경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옛길의 모습을 살리면서 걷기 좋게 정비한 길로, 계곡 바로 옆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올라갈 때는 구천동 계곡물과 같은 높이에서 가까이 보는 어사길을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체력 안배를 고려해서 편한 걷는 길을 내려오는 것이 좋다.

두 길의 가장 큰 차이는 안내 표지다. 어사길에는 구천동 33경 안내판이 거의 없어 현재 위치를 알기 어렵다. 인월암 부근이어서 제16경 인월담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신 옛길 곳곳에 전설과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걷는 길은 높은 곳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많고 33경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다. 두 길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중간중간 만나며 같은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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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아래쪽에서 약 2㎞를 걸어 백련사 4㎞ 앞인 제19경 비파담까지 보고 내려왔다. 저녁을 먹은 뒤 삼공리 반송을 보러 갔다. 반송은 수령 약 2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약 17m다. 나무 윗부분이 우산처럼 넓게 펼쳐진 모습이 특징이다. 가지가 옆으로 퍼져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 곳에 두꺼운 철 사슬을 설치했는데, 나무 둘레를 묶은 것이 아니라 소나무에 박아서 고정해 놓았다. 지역 주민들은 이 소나무를 구천동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기며 ‘구천송’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첫날은 첫 번째 목적지였던 향적봉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내구천동의 절경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한 숙소로 가면서, 막걸리 한 병을 사려고 동네를 돌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그런데 숙소 아래층이 바로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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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토를 발로 읽어낸 해군 제독의 국토순례기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 출간!”


“그곳에 가면 사람이 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은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삶을 다시 찾아가게 만드는 글은 드물다. 좋은 글은 숨결이 되고, 마음결이 되어 독자를 길 위로 이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평생 바다를 지켜온 해군 제독 출신 이병록이 이제는 자신이 지켜온 이 땅을 직접 걷기 시작했다. 그는 국토를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국민의 땀이 밴 역사이자 삶의 흔적이 축적된 문화의 장으로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국토야말로 가장 깊은 교육의 현장임을 보여주며, 국가와 국민, 그리고 주권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더 나아가 묻는다. 국가는 이 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처럼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저자는 남해 바래길에서 시작해 섬진강과 남한강, 동해안과 접경지역까지 전국을 다니며, 지도 위에 드러나지 않는 삶의 흔적을 복원해낸다. 그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마을과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개발의 풍경이 교차한다. 

무너진 돌담과 비어 있는 집, 끊어진 골목과 사라진 장터는 더 이상 개인의 추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다. 이 기록은 오늘의 대한민국 국토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그리고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게 묻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개발’을 성장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수많은 지역이 소멸의 경계로 밀려났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속도와 효율의 이름으로 지워진 것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며 공동체였다.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는 바로 그 지워진 것들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이 땅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국토는 개발의 대상인가, 아니면 기억과 삶이 축적된 공동의 자산인가. 


이 책은 이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꺼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바라볼 것인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 책을 덮고 나면 ‘걷는다’는 것이 곧 ‘살아간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설동근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국토를 이해하는 가장 깊은 방식은 현장에서 배우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양승조 전 충남지사는 “지역의 맥락과 사람의 온기를 살려낸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발행인은 “이병록은 국토를 ‘살아있는 지도’로 읽어낸다”고 했고, 박승복 목사는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함께 담아낸 인문지리적 성과”라고 평했다. 한종수 작가는 “만 리를 걷고 만 권을 읽은 삶이 이 책의 깊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우리 강토 속에서 살아온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는 그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기록이자, 사라짐에 맞서는 하나의 저항이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읽고, 다시 쓰는 한 권의 역사문화지리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있는지 묻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정확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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