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니 총리, 에드먼턴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기념일’ 행사 참석
- 가족과 떨어진 원주민 아동 15만 명 넘어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책임”
“생존자들은 이 나라가 외면하던 때에도 진실을 지켜왔습니다. 그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가 원주민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s)의 역사를 되새기며 생존자와 가족, 그리고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어린이들을 기억했다.
카니 총리는 9월 30일(현지시간)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열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기념일(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행사에 참석했다. 이어 10월 1일 공식 X 계정에 현장 사진과 함께 원주민 기숙학교의 역사를 언급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100년 넘게 기숙학교 제도를 운영했으며, 그 과정에서 15만 명이 넘는 원주민 어린이가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 학교에 보내졌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의 대상에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과 이누이트(Inuit), 메티스(Métis) 어린이들이 포함됐다.
기숙학교 제도는 원주민 어린이를 가족과 공동체에서 분리해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을 바꾸려 했던 동화 정책과 맞닿아 있다. 연방정부가 제도를 뒷받침하고 상당수 학교의 운영을 교회와 종교단체가 맡았다. 학교에 보내진 어린이 가운데 상당수는 영양실조와 질병, 신체적·성적 학대 등을 경험했고 일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캐나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는 2015년 최종 보고서에서 이 제도를 ‘문화적 집단학살(cultural genocide)’로 규정했다.
카니 총리가 이날 가장 강조한 것은 그 역사를 직접 겪은 생존자들의 목소리였다.
그는 X에 “생존자들은 이 나라가 그러지 않았을 때 진실을 지켜왔다(Survivors carried the truth when this country would not)”며 “그 진실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날 에드먼턴에 모인 이유에 대해 “생존자들을 기리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어린이들을 기억하며,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공개된 사진에는 카니 총리가 원주민 지도자들과 나란히 걸어 행사장으로 향하는 모습도 담겼다. 화려한 전통 머리장식과 의상을 갖춘 원주민 지도자들 사이에서 카니 총리의 가슴에는 주황색 리본이 달려 있다.
캐나다에서 주황색은 원주민 기숙학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9월 30일 ‘오렌지 셔츠 데이(Orange Shirt Day)’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기념일’을 맞아 시민들이 주황색 옷을 입는 것도 기숙학교 생존자와 희생된 어린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캐나다가 국가 차원에서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고 책임을 논의하기 시작한 과정에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한 진실과화해위원회에는 6,600명 이상의 생존자와 목격자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과 아동복지, 보건, 사법, 언어·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94개 행동 촉구(94 Calls to Action)’를 제시했다.
9월 30일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 캐나다는 2021년부터 이날을 연방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기숙학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돌아오지 못한 어린이, 가족과 공동체를 공식적으로 기리고 있다.
카니 총리는 올해 기념일 성명에서도 연방정부가 기숙학교 제도를 만들고 유지한 책임이 있으며, 그 피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동시에 화해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공동체와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00년 넘게 이어졌던 기숙학교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족과 헤어졌던 어린이들은 생존자가 되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세상에 증언했고, 그 목소리는 오랫동안 가려졌던 역사를 캐나다 사회가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카니 총리가 남긴 말처럼 이제 남은 질문은 그 진실을 알고 난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캐나다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기념일’은 과거를 기억하는 날인 동시에, 그 기억을 다음 세대의 책임으로 어떻게 이어갈지를 묻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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