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 없이 겨울에 만든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한 고대 페르시아의 지혜
- 두꺼운 벽과 지하 저장고, 자연의 원리를 활용한 냉각 기술에 주목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얼음을 꺼내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냉장고는 물론 전기조차 없던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겨울에 만들어 둔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할 수 있는 특별한 저장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건축에 활용한 고대인들의 지혜는 수천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놀라움을 준다.
11일 X 계정 ‘LeoDaVinci Wave’에는 약 2400년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사용된 얼음 저장시설 ‘야흐찰(Yakhchāl)’을 소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전기나 기계식 냉각장치가 없던 시대에 사막의 혹독한 기후를 극복하고 얼음을 보관했던 독특한 건축 기술을 조명한 내용이다.
야흐찰은 페르시아어로 얼음을 뜻하는 ‘야흐(Yakh)’와 구덩이를 의미하는 ‘찰(Chāl)’이 합쳐진 말이다. 이름 그대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오늘날 이란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용됐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흙으로 만든 원뿔이나 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더위를 견디기 위한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다. 두껍게 쌓아 올린 벽은 뜨거운 외부 공기의 열이 안쪽으로 전달되는 것을 늦추고, 땅속 깊이 마련한 저장 공간은 지표면보다 온도 변화가 적은 지중 환경을 활용해 얼음이 쉽게 녹지 않도록 했다.
얼음을 만드는 방법도 자연의 흐름을 따랐다. 겨울철 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얕은 수로와 웅덩이에 물을 채워 얼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얼음은 잘라서 지하 저장고로 옮겼고, 두꺼운 벽과 흙의 단열 효과 덕분에 무더운 여름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건조한 기후와 낮과 밤의 큰 기온 차이는 얼음을 만드는 데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부 야흐찰에는 햇빛을 가리는 높은 벽을 세워 낮 동안 물이 데워지는 것을 줄이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른 곳에서 생산하거나 운반한 얼음을 저장하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건축에 사용된 재료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야흐찰에는 ‘사루즈(Sarooj)’라는 전통 모르타르가 활용됐다. 점토와 석회, 모래, 재 등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재료는 방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저장시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조합해 사막 환경에 적합한 건축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야흐찰은 단순히 얼음을 쌓아 두는 창고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무더운 지역에서 귀한 자원이었던 얼음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시설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뒷받침했다.
이란학 전문 백과사전인 '이란 백과사전(Encyclopaedia Iranica)'에 따르면 야흐찰은 20세기 중반 기계식 냉장 기술이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 이란 지역에서 얼음을 공급하는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2005년까지 이란 문화유산 당국에 등록된 얼음 저장시설은 56곳으로 기록돼 있다.
오늘날에도 이란 야즈드주의 메이보드와 케르만 등지에서는 야흐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기능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건축물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야흐찰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건축 분야에서는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자연채광과 통풍, 단열, 지중 온도 등을 활용하는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야흐찰 역시 외부의 열을 차단하고 땅속의 비교적 안정적인 온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계 방식과 닮아 있다. 물론 현대 냉장고처럼 원하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는 없었고, 얼음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도 지역의 기후와 저장 조건에 따라 달랐다.
그럼에도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자연의 원리를 활용해 얼음을 보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기 쉽지만, 때로는 자연환경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특성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야흐찰은 사막의 더위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건축물이었다. 기후변화로 냉방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는 오늘날, 오래된 얼음 저장고가 전하는 지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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