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고,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57개”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동시에 미국과 한국의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줄이도록 지시하면서 북한을 향한 군사적 압박의 수위도 낮추고 있다. 최근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당시의 ‘정상 간 직접 담판’ 외교를 다시 가동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2018년과 크게 달라졌다. 북한은 당시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강화했다. 반면 미국은 이란과의 장기적인 충돌이라는 중동 문제를 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김정은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외교적 성과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날 계획을 밝히면서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미국과 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핵무기의 정확한 숫자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현실을 공개적으로 전제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은 외부에서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기관별 추정치에도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8월 20일 국회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일반적으로 80~120개 정도로 추정한다며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기는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57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57개라는 숫자를 북한의 실제 핵무기 보유량으로 확정해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핵탄두의 완성품만 계산하는지,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을 이용해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잠재적 탄두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추정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현실적인 군사적 상대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북미 협상의 성격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미국이 내세운 핵심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이후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과 핵능력에 대한 상당한 조치를 요구했고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하지만 2026년의 북한은 당시와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했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확대하면서 국제적 고립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이 과거보다 경제적·군사적으로 강해졌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활용하면서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압박의 효과도 과거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반드시 서둘러야 할 이유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핵무기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기하는 대신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관계 정상화나 제재 완화,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한 것도 이러한 새로운 대북 접근의 일부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6일 미국과 한국의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그는 훈련 비용과 함께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으며, 김정은 위원장과 자신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의 연합훈련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억제 수단이다. 따라서 훈련 축소는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북한에 대한 신뢰 구축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예상보다 냉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비공개 접촉이 있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지의 발언에 대해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과 한국이 연합훈련 규모를 줄인 것만으로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좋다는 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미국의 훈련 축소 직후에도 미사일 발사를 단행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8월 2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약 10발을 발사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한 다음 날 발생한 것으로, 미국의 대화 제스처가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즉각 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을 단순히 ‘미국의 양보’로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이 군사적 능력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까지 확보한다면 김정은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은 과거와 같은 비핵화 협상으로 단순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전제로 협상을 시작한다면 협상의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능력 제한과 관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핵물질 생산 중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제한, 핵시설 사찰, 핵무기 추가 생산 억제 등을 북한에 요구하고 그 대가로 제재 완화나 관계 정상화,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일 수 있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도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미국과 협상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안보 불안이 커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미국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위협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한국과 일본이 직면한 단거리·중거리 핵미사일 문제를 상대적으로 뒤로 미룬다면 동북아시아의 안보 균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를 80~120개로 추정하는 것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운다. 물론 이 수치 역시 정확하게 검증된 숫자가 아니라 여러 연구기관의 분석을 토대로 한 추정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57개라는 수치보다 훨씬 많은 규모라는 점은 북한의 핵능력이 과거보다 빠르게 커졌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은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
미국은 현재 이란과 장기적인 군사적·경제적 충돌을 겪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상당 부분 투입된 상황에서 한반도까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워싱턴으로서는 부담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출 수 있다면 미국은 전략적 자원을 다른 지역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김정은과 특별한 개인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을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생각하고 있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2019년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이 전통적인 외교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관과 관료를 통한 장기간의 협상보다는 정상 간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에게도 계산법이 있다.
김정은은 더 이상 2018년의 약한 협상 당사자가 아니다. 핵무기를 늘렸고 미사일 능력을 강화했으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외교적 공간도 넓혔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김정은에게는 협상력을 높여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분석한 것처럼 북한은 현재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며, 김정은은 현재의 전략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먼저 양보하도록 기다릴 수도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정상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2018년과 같은 장면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
이번에는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고 북한이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이를 관리하려는 미국 사이의 훨씬 복잡한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규모를 직접 언급하면서 비핵화 목표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중요한 신호다. 한국 언론과 해외 언론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여전히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역시 최근 분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재접촉을 추진하면서 최종적인 대북 목표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비핵화가 향후 정상외교의 중심에 남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57개라는 발언 역시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정한 정보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나타난 변화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했다’기보다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협상에서 무시하기 어려워진 상황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대북 행보는 북한에 대한 강경 압박보다는 직접 대화를 통한 긴장 완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직접 언급하는 일련의 행동은 이러한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김정은은 오히려 자신의 핵능력이 커졌다는 사실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훈련 축소 직후에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러한 계산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앞으로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두 정상이 무엇을 놓고 협상할 것인가다.
2018년에는 비핵화가 핵심 의제였다. 그러나 2026년에는 북한의 핵무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과 군비통제, 미사일 제한, 제재 완화, 한미연합훈련, 종전 및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등이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이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일부를 사실상 현실로 인정하고 그 대신 핵능력의 추가 확대를 제한하는 협상에 나선다면 이는 한반도 외교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북한에는 국제적 지위를 높일 기회가 되고, 미국에는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관리할 기회가 된다.
반면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안보 부담이 될 수 있다.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상 용인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면 한국과 일본의 자체적인 안보·핵무장 논의까지 자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대북 접근은 단순히 김정은과 다시 만나려는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상대할 것인지, 그리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북한과 어느 수준까지 타협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시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8년 전과 달리 이번 협상 테이블에 앉는 북한은 훨씬 강한 핵능력을 가진 북한이다. 따라서 향후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비핵화 협상의 재개’라기보다 핵보유 현실을 둘러싼 새로운 북미 거래의 시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북한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 일본의 대응,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까지 동시에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밀착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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