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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지운 삶, 예술은 무엇을 되살릴 수 있나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10.0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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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WAR 1004’ 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10월 17일 세종서 출발
  • 35개국 작가 참여 뜻… 전시를 평화교육·기억·구호로 잇는 국제연대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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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전쟁을 설명하는 언어에는 숫자가 많다. 사망자와 부상자, 피란민의 수, 무너진 건물과 복구 비용이 참상을 전한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삶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저녁, 주인을 잃은 식탁, 아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학교다. 예술이 전쟁 앞에서 맡을 수 있는 일은 그 지워진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오는 10월 17일 세종에서 시작하는 ‘NO WAR 1004 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시와 교육, 국제연대 활동으로 이어가려는 시도다. 추진위원회가 제시한 목표는 반전 메시지의 확산과 전쟁 희생자의 기억 계승, 미래세대 평화교육, 전쟁 피해 아동과 난민 지원이다. 작품을 보는 경험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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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추진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현재 35개국 예술가 215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회화·사진·조각·영상 등 940여 점의 작품이 접수됐다. ‘1004’는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모인 ‘1004개의 평화의 빛’을 상징한다. 참여 의사와 작품 접수 규모는 주최 측이 밝힌 수치로, 실제 전시 구성과 참가 현황은 개막 단계에서 구체화될 예정이다.

앞서 공개된 행사 안내에는 세종 전시가 10월 17일부터 30일까지 정부세종청사 체육관에서 열리며, 개막일 오후 3시 출정식과 평화 선언문 낭독이 진행되는 것으로 제시돼 있다.

프로젝트는 세종을 출발점으로 제주·광주·서울·강원 고성으로 활동을 넓히고, 폴란드·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미국 내 홀로코스트 관련 기관, 디트로이트 등으로 국제 교류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제공된 자료에는 해외 개최 기관의 구체적인 명칭이나 도시별 일정, 협약 체결 여부가 제시되지 않았다. 해외 순회는 현재 발표된 추진 계획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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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국내 거점들을 연결하는 기획에는 의미가 있다. 제주와 광주, 접경 지역 고성은 각각 다른 역사와 기억을 품고 있다. 이 장소들을 하나의 평화예술 프로젝트로 잇는다면, 관객은 전쟁과 국가폭력, 분단이 사람들의 일상에 남긴 흔적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그 연결이 깊이를 얻으려면 각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 전쟁과 학살, 국가폭력과 분단은 발생 원인도, 책임의 구조도 다르다. 모든 비극을 ‘평화’라는 말로 묶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피해와 책임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지역의 기록과 생존자의 증언, 유족의 목소리가 작품과 만날 때 순회전은 장소를 옮기는 행사를 넘어 기억을 잇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국제 교류에서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나라의 비극을 나란히 전시하는 일은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삶을 빼앗겼는지 살피고, 다른 사회가 그 기억을 어떻게 보존해 왔는지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술의 보편성은 역사의 차이를 지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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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이번 프로젝트가 내세운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슬로건은 시민의 참여를 여는 문장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혐오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태도는 평화의 토대다. 동시에 전쟁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막을 수 없다. 무력을 결정하는 권력과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 폭력을 지속시키는 구조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따라서 국적과 이념을 넘어 연대한다는 취지는 인권 침해의 책임을 묻는 일과 함께 가야 한다. 반전예술이 힘을 얻는 지점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메시지를 내놓을 때보다, 외면해 온 고통을 관객 앞에 구체적으로 드러낼 때다. 서로 다른 해석과 불편한 질문을 허용하는 전시가 평화에 관한 대화를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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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어린이·청소년 참여 프로그램은 이 구상의 중요한 축이다. 추진위원회는 평화 깃발 제작과 글쓰기, 공동선언 발표 등을 통해 미래세대가 직접 활동에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교육의 성패는 아이들이 어른이 정해 놓은 문장을 얼마나 잘 재현하느냐로 평가하기 어렵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폭력이 무엇인지, 낯선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스스로 묻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 피해 아동과 난민도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등장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의 그림과 이야기, 일상의 경험이 존중받는 방식으로 교육과 전시에 연결된다면 관객은 ‘피해자’라는 범주 뒤에 있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당사자의 동의와 사생활 보호, 상처를 자극할 수 있는 표현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전시·출판·후원 등을 통해 마련한 수익과 기금을 아동 지원, 난민 구호, 예술치유에 활용한다는 계획은 프로젝트를 실천으로 연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가능성을 신뢰로 바꾸는 것은 구체적인 운영이다. 기금의 조성 방식과 전달 기관, 집행 내역, 지원 결과를 공개해야 참여 작가와 후원자, 시민이 자신의 참여가 어디에 닿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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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예술프로젝트 제공

 

지속 가능한 국제연대 역시 개막식의 규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품과 교육자료를 공유하고, 지역 단체와 학교가 프로그램을 이어가며, 참여 작가들이 다음 활동을 함께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순회 도시의 수와 출품작의 규모에 더해 어떤 관계와 실천이 남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

‘NO WAR 1004’는 이제 출발을 앞두고 있다.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보내고 평화를 함께 말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의 출발 자산이다. 앞으로의 성과는 그 뜻이 전시장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지, 교육과 구호 현장에 어떤 변화를 남기는지에 달려 있다.

예술은 무너진 집을 곧바로 다시 세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집에 누가 살았는지 오래 기억하게 할 수 있다. 세종에서 시작하는 이번 프로젝트가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그 얼굴과 삶이다. 그 기억이 시민의 참여와 책임 있는 지원으로 이어질 때, ‘평화의 빛’이라는 이름도 현실의 무게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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