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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비운, 역사로 되돌아오다...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끓는 이 마음을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2.18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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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1장릉옆 배소옆, 빼어난 신선암(선돌) 풍경.jpg
▲ 배소 옆, 빼어난 신선암(선돌) 풍경. [사진=EET NEWS]

 

나는 한 마리

궁궐을 쫓겨난 원통한 새

짝 지을 그림자도 없는

외로운 몸 산속을 떠도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마루에 달빛 걸려 있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두견화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내 애끊는 소원 듣지 못하고

슬픈 내 귀에 소쩍새 울음만 

들리는 것이냐

 

-단종(端宗)(1441~1457) '자규시(子規詩)' 중

 

단종 원년 10월 수양대군은 자신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의정부 대신인 황보인, 김종서 등이 결탁하여 모반하려 한다는 것을 핑계로 군사를 동원하여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켰고 정권은 수양대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후 단종은 송현수의 딸 송씨를 왕비로 맞아들였지만 궁중의 내시와 나인들까지도 수양대군이 두려워 눈치만 살피니 진정으로 어린 왕과 중전을 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양대군 일파의 음모는 단종을 고립시키고 정신적으로 짓눌러 하루빨리 선위하도록 하자는 계략이었다.


단종 3년 6월 어린 왕은 마침내 내시 ‘전균’을 불러 선위하겠다는 뜻을 써주었다.


“과인은 아직 어려 중외의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없도다. 

지금까지 용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 과인이 덕이 없어 

많은 사람이 처형되었고 아직도 옥사가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용상에 머물러 있을 수 없노라.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전하고자 하오니 

조정 중신들은 과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고 

새 임금을 모시어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바라노라.”

 

단종2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밤 머물렀다는 우화루.jpg
▲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 머물렀다는 우화루. [사진=EET NEWS]

 

1457년 음력 6월, 열일곱의 임금이 도성을 떠나던 날 한양의 공기는 눅눅한 먹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계유정난 이후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향하는 길. 실록은 이를 유배라 적었지만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생이 꺾이는 소리였으며 한 시대의 심장이 조용히 멎는 소리 같았다.


기약 없는 귀양살이를 떠나는 단종,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홀로 궁궐에 남아  처신를 기약할 길 없는 어린 신부 아니었을까, 위화도 회군을 하여 역성혁명을 단행한 이성계가 문을 열었던 조선, 왕은 개성 수창궁에서 2년을 있다가 ‘새 술은 새 푸대에’라는 생각으로 대신들의 뜻을 따라 한양 천도를 단행한다. 


그러면서 고려의 ‘적자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단종은 아버지 문종에 이어 조선 27대(태조 포함) 왕손 중 2대에 걸쳐 가장 확실한 장손 적통을 한다. 그러나 작은 아버지의 반란으로 인하여 지금 귀양을 가는 것이다. 


단종은 배소에 다다를 무렵 주천쉼터에 잠깐 쉬었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쪽 하늘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시 한 편을 남긴다.  


먼 유배길에 많이 지친 탓인가 보오

졸음에 겨워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저 하늘 너머로 어렴풋이 한양을 보았소

 

유배행렬을 향해 눈물짓던

정순왕후 그대의 마지막 모습도 함께…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길로 접어든

예감이 드는구려

 

- <주천쉼터>에서

 

단종2철망 건너 영조가 직접 쓴 현판 글씨, 前峰後巖於千萬年(전봉후암어천만년).JPG
▲ 철망 건너 영조가 직접 쓴 현판 글씨, 前峰後巖於千萬年(전봉후암어천만년). [사진=EET NEWS]

 

비각에는 영조가 직접 쓴 현판 글씨인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가 전해지는데, 이 글씨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슬픔을 기리며 영조가 1771년에 직접 쓴 글씨인데, '앞 봉우리와 뒷 바위 천만년을 가다'라는 뜻이다. 


궁궐 안에는 또 하나의 적막이 남았다. 열다섯의 정순왕후 송씨. 그녀는 남편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의 열다섯이었다. 궁궐의 붉은 담장은 그에게 갑옷이 아니라 감옥이 되었고 폐비가 되어 정업원의 적막은 종묘의 제례보다 더 엄숙했다. 그녀는 궁궐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이미 남쪽으로 끌려가고 있을 어린 남편의 안위를 빌었다고 전한다. 정순왕후의 생활은 거칠어졌으며 세상을 등진 채 복위만을 생각했을까? 


본래 궁중 여인들의 수행 공간이었던 정업원, 이때부터 그곳은 다른 곳이 되었으며 한 여인의 눈물과 침묵이 스며든 자리가 되었다. 


청룡사는 도성 동쪽에 있는 왕실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었다. 단종이 유배길에 오르기 전 우화루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이곳, 정업원과 한 담으로 있는 이 절에서 왕후는 기도를 했다. 

 

그 위로 멀지 않은 곳에 동망봉(東望峯)이 있다. 이름 그대로 ‘동쪽을 바라보는 봉우리’이다. 이곳에 서면 영리교(永離橋,영도교.(永渡橋, 영이별다리)가 잘 보인다. 도성 밖으로 나가는 길목의 다리. 백악을 내려온 물이 조선의 법궁 경복궁 아래를 지나 조선의 심장부로 흘러갔을 청계천, 왕후는 여기까지 마중 나올 수 있었을까? 이제는 애끓은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곳,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 길목마다 눈물이 넘쳐났을 것이다. 


청룡사를 지나면 멀지않은 곳에 동망봉이 있다. 왕후는 매일 그것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단종의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지금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마을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서 바라보는 영리교는 지척이다.


“장소는 기억을 품는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봉우리에서는 아직도 

떠나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업원으로 쫒겨난 왕비의 생활은 궁핍했고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그녀에게 음식물이라도 보내는 자가 있으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까지 내렸졌다. 


왕비는 자지동천(紫芝洞泉, 자주동천)에서 옷감을 물을 들여 호구(糊口)에 보탰다고 하며, 마을의 여인네들은 그 아래 동묘에 새벽 여인시장을 열어 몰래 그 집 앞에 갖다두었다고 한다. 

 

쟁반 위에 올려진 아름다운 섬, 한반도..jpg
▲ 빼어난 풍경,청령포. [사진=EET NEWS]


단종이 귀양 간 영월 청령포. 삼면이 강물에 둘러싸인 땅에서 단종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린 가슴을 찢었을 것이다.  


천 만리 머나면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이 단종의 유배를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느낀 비통함과 죄책감을 냇물에 감정 이입하여 표현한 평시조인데, 지금 읽어도 가슴이 애끓는 수작이다. 


1457년 10월, 왕은 한많은 생을 마감한다. 왕의 나이 이제 열일곱, 엄흥도는 왕을 수습했다. 장지는 초라했으나 1698년 숙종 때 복위되며 장릉으로 격상된다. 이름은 되찾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 곁에 한 지방 아전의 이름은 남았다. 엄홍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실록과 읍지에 전하고 있다. 권력이 침묵하던 자리에서, 이름 없는 관리가 의리를 택했다. 


“역사는 그를 길게 적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오래 기억한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조카인 단종은 영월에서 생을 마감했다.

 

단종4장릉.jpg
▲ 장릉. [사진=EET NEWS]


그로부터 8년 뒤인 1465년, 도성 한복판에 대형 사찰이 세워진다. 세조 11년 원각사 중창. 억불정책이 국가의 기조였던 조선에서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세조는 온 몸에 부스럼이 끊이지 않았다. 조선의 명승지와 사찰은 다 찾아 다녔지만 효험이 없었다.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항간에는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떠돈다. 


왕은 경전 간행과 사찰 중창에 적극적이었으며 원각사는 그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도성 한복판에 세워진 이 절에서 단종의 안녕을 빌었다. 


원각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었다. 왕권의 후원 아래 세워진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그 규모와 정교함으로 증명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고려 불교 조형미를 계승하면서도 조선적 절제를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기도는 패자의 언어일까?” 


원각사의 전각들은 다 사라졌지만 터에 남은 십층석탑은 지금도 묵묵히 서 있다. 탑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오래가는 단종의 증언처럼 보인다. 세조가 세운 사찰이라는 점에서 시간의 아이러니가 더 짙어온다.


탑 옆에는 '대원각사비'도 세워졌다. 김수온이 글을 짓고 당대 명필이 새긴 비문은 하지만 시간 앞에 모든 것은 낡아가고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원각사는 점차 쇠퇴한다. 건물은 철거되거나 사라졌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원으로 정비된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십층석탑과 비석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일대를 자연스럽게 ‘탑골’이라 불렀다. 탑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돌은 무너지지 않았고 침묵은 이어졌다. 훗날 그곳은 공원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 탑이 서 있는 자리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다. 왕권이 세운 종교 공간은 시간이 흐르며 민권의 출발점이 되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 조선의 독립을 외친 것이다. 


권력이 세운 종교 공간은 세월을 건너 민중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광장이 되었다. 탑은 또 다른 외침을 지켜본 것이다.


단종5서울에 만든 최초의 근대식 공원, 1902년 광무6년에 세운 팔각형정자,19년 3,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건축가 심의섭.jpg
▲ 1902년 건축가 심의섭이 서울에 만든 최초의 근대식 공원,  3,1절에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사진=EET NEWS]


하늘은 들었을까.

단종의 유배길의 울음을, 정순왕후의 침묵을, 


엄홍도의 선택도. 세조의 원각사은 돌처럼 변치않는 사실과 바람처럼 흔들리는 전승의 서로 다른 층위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붓으로 기록되었지만 기억은 장소 위에 쌓인다.


“도성의 돌다리와 절집, 봉우리와 물길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곳을 걷다 보면,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지층처럼 발밑에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종은 패배한 왕이었으나 기억 속에서는 가장 어린 임금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정순왕후는 기다림의 이름이 되었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십층석탑을 올려다보면, 한 소년 임금의 그림자와 왕권 그리고 민중의 외침이 한 자리에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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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각사지 10층석탑. [사진=EET NEWS]


오늘날 탑골공원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곳이 원각사 터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정자 위에서 노인들이 더러는 누워 쉬고 있고, 벤치에도 몇 사람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이 도심의 작은 쉼터 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들어 십층석탑을 바라보면 시간의 층위가 겹쳐진다.


“건물은 사라져도 상징은 남는다.

권력은 지나가도 공간은 기억을 품는다."

 

단종의 비극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장소가 아니라 할 지라도 그 슬픔의 물기가 저릿하게 전해온다. 세조가 세운 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조선 권력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권력이 사라진 뒤에도 탑은 남아 천 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은 들었을까.

그러나 하늘의 대답은 언제나 늦게 도착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 대답은 영월 장릉의 능침 위에 내려앉은 복위의 교지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탑골 공원에 울려 퍼진 또 하나의 독립 함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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