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수염을 가진 얼굴 때문에 이름 붙여진 수염물범(Bearded Seal)이 독특한 생김새뿐 아니라 뛰어난 감각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 해양보전단체 Oceana는 8월 10일 X 공식 계정을 통해 수염물범의 긴 수염이 단순한 외형적 특징이 아니라 해저에서 먹이를 찾는 중요한 감각기관이라고 소개했다.
수염물범은 학명 Erignathus barbatus로 불리는 북극권의 대표적인 해양 포유류다. 성체는 길이가 약 2.1~2.4m에 이르고 몸무게가 최대 약 360㎏에 달해 북극에 서식하는 물범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네모난 형태의 앞지느러미와 비교적 작은 머리, 그리고 얼굴을 뒤덮은 길고 하얀 수염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특히 수염물범의 수염은 일반적인 털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수염은 진동과 물의 흐름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 ‘비브리사(vibrissae)’다. 수염물범은 시야가 제한되는 물속에서 이 수염을 이용해 해저를 훑으며 먹이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게, 조개, 새우, 고둥 같은 무척추동물과 대구·스컬핀 같은 어류 등이 주요 먹이다.
이러한 능력은 특히 북극의 해저 환경에서 중요하다. 수염물범이 주로 살아가는 곳은 계절적으로 얼음이 형성되는 비교적 얕은 바다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이들은 일반적으로 수심 약 200m 이내의 대륙붕 지역에서 먹이를 찾으며, 베링해·축치해·보퍼트해 등 알래스카 주변 북극 해역에서도 발견된다.
수염물범은 해저에서 먹이를 찾을 때 단순히 눈으로 먹이를 찾아 쫓아가는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긴 수염이 물의 미세한 움직임과 진동을 감지하면서 먹이가 지나간 흔적을 찾아낸다. 특히 물고기와 같은 먹이가 헤엄치면서 남긴 유체역학적 흔적(hydrodynamic wake)을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물범의 수염은 일종의 정교한 수중 탐지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물범의 수염이 단순히 물의 진동을 감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염은 물범이 스스로 헤엄칠 때 발생하는 불필요한 진동을 최소화하면서 주변 물의 흐름 변화를 감지하도록 독특한 물결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구조가 먹이가 남긴 미세한 물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수염물범의 먹이 사냥은 북극의 차가운 해저 환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들은 주로 해저 또는 해저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먹이를 섭취하며, 부드러운 몸을 가진 저서생물을 먹을 때는 강한 흡입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먹이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얼음은 수염물범에게 단순한 휴식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떠다니는 해빙은 수염물범이 물 밖으로 올라와 휴식하고 털갈이를 하는 장소이며, 새끼를 낳고 기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얼음 가장자리에 머물면서 머리를 물 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재빨리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동으로 알려져 있다.
수염물범은 대부분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독특한 수중 노래를 낸다. NOAA에 따르면 수컷의 발성은 번식 상태를 알리거나 수중 영역을 표시하는 데 활용되며, 일부 소리는 상당한 거리까지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북극 환경에 특화된 수염물범의 생존 기반은 기후변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수염물범은 해빙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빙의 감소와 변화는 휴식과 번식, 털갈이를 위한 서식 공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북극 지역의 선박 운항 증가와 산업 개발에 따른 소음과 오염 가능성 역시 잠재적인 위협으로 지적되고 있다. Oceana는 수염물범이 현재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준위협(Near Threatened)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염물범의 긴 수염은 결국 북극이라는 극한 환경에 적응해 만들어진 정교한 생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모든 것을 확인하기 어려운 차가운 바닷속에서 수염을 통해 물의 움직임을 읽고 해저의 먹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Oceana가 10일 소개한 수염물범의 모습은 귀여운 외모 이상의 의미를 보여준다. 얼굴에 난 긴 수염 하나하나가 북극 바다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어내는 감각기관이며, 그 수염을 통해 수염물범은 보이지 않는 해저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각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북극의 해빙과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수염물범의 수염은 북극 생태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서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창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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