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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비핵화’에서 ‘유가 안정’으로…트럼프 행정부, 전쟁 목표 조정하나

  • 이경희 기자
  • 입력 2026.08.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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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D. 밴스 미국 부통령 [사진=J.D. Vance X]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전쟁의 목표가 당초보다 크게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란의 완전한 항복과 정권 교체, 핵무기 개발의 영구적 차단, 중동 친이란 무장세력에 대한 지원 중단 등을 거론했던 미국이 최근에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 방지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안정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첫 번째 목표는 걸프 국가들이 세계 경제에 석유와 가스를 계속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미국인의 유가와 휘발유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꼽은 뒤 “두 번째 목표는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백악관은 두 목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설명했지만,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차단을 사실상 최우선 목표로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완전한 승리’에서 현실적인 출구 찾기로


전쟁 초기 미국이 제시했던 이란 정책의 목표는 훨씬 광범위했다. 핵무기 개발을 막는 것은 물론 이란의 미사일 전력을 약화시키고, 헤즈볼라 등 중동 내 친이란 무장세력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란 정권의 행동 자체를 바꾸는 것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전쟁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미국이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와 당초 정치적 수사가 점차 분리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효과를 강조하는 한편, 지하에 매장된 핵물질을 실제로 제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핵시설 공격 이후에도 위성사진을 통한 감시와 국제사찰 등을 활용해 이란의 핵 활동 재개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핵시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주장과 향후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다.


미국의 핵확산 감시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6월 보고서에서 이란의 주요 농축시설인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 등을 분석한 결과 당시까지 우라늄 농축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약 440㎏에 달하는 60% 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농축물질의 처리와 지하 시설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미국이 군사작전을 통해 이란의 핵 인프라에 상당한 피해를 줬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를 실제로 검증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전쟁의 새로운 핵심으로


전쟁 목표 변화의 배경에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산유국에서 생산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세계시장으로 이동하는 주요 해상 통로다. 전쟁 이후 이 지역의 선박 운항이 크게 위축되면서 국제 유가와 해상 운송 비용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의 핵 문제뿐 아니라 해협을 안정적으로 개방해 국제 에너지 공급을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에서도 핵 문제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양측은 해협을 다시 개방하는 방안을 논의해왔지만 선박 통항 방식과 검사, 통행료 등을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다. 미국은 통행료 없는 자유로운 항행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해협에서 일정한 통제권과 경제적 권리를 확보하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존재했던 ‘정상적인 해상 운송’을 다시 확보하는 것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현실적인 목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는 역설


여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역설이 나타난다.


전쟁 이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국제적인 석유와 가스 수송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 이후 해협의 통항 문제가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로 발전했고, 미국은 이제 다시 해협을 정상화하는 것을 중요한 전쟁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의 목표가 이란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나 광범위한 군사적 무력화에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무기 개발 차단으로 축소된다면, 결국 전쟁을 통해 얻으려는 결과 가운데 하나가 전쟁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셈이다. 일부 해외 매체가 이를 두고 ‘전쟁 전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역설’이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휘발유 가격 상승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은 유권자들의 체감경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메시지도 미묘하게 달라져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트럼프는 한때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더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규모 추가 군사작전보다는 경제 제재와 협상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낮은 강도로 대응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며, 미국은 새로운 대규모 공격보다는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와 함께 중국의 이란산 원유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이 중국의 이른바 ‘티폿 정유사’와 이란산 원유 거래를 처리하는 금융기관을 겨냥한 2차 제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군사적 승리를 통한 항복보다는 경제적 압박을 통해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


문제는 미국의 목표가 현실적으로 조정되고 있다고 해서 이란과의 협상이 곧바로 성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6월 잠정적인 합의를 도출했지만 이후 협정이 사실상 붕괴했고, 8월 중순 현재 이를 되살리기 위한 협상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항구 봉쇄를 해제하고 동결자산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직접 협상뿐 아니라 오만과 카타르, 파키스탄 등 주변국을 통한 외교 채널도 가동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와 그리스까지 이란과 접촉하면서 외교적 출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불신은 여전히 깊다. 이란은 미국의 군사공격과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한꺼번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이란이 먼저 행동으로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리’의 정의가 바뀔 가능성


결국 이번 전쟁의 향방은 미국이 ‘승리’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초기의 승리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완전 제거와 군사력 약화, 정권의 근본적 변화였다면 현재 미국이 핵무기 개발 방지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에너지 가격 안정 정도를 목표로 삼는다면 훨씬 제한적인 합의도 ‘승리’로 포장할 수 있다.


미국이 최근 경제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서도 대규모 군사공격을 자제하는 것은 이런 출구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선택지와 외교적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경제 제재를 다시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시에 미국의 무기 재고 부담과 국내 유가 상승도 군사적 확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와 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과 제재 해제, 동결자산 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어 양측의 협상 간극은 상당하다.


장기전의 출구를 찾는 워싱턴


결국 J.D. 밴스 부통령의 최근 발언은 단순한 표현상의 변화라기보다 장기화된 이란 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현실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핵무기 개발을 막는다는 목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경제와 세계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비용 역시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은 국제 유가 상승과 물류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역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앞으로 이란에 요구하는 조건은 당초의 ‘완전한 항복’보다는 핵무기 개발 방지와 해협의 항행 정상화라는 보다 제한적인 목표로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것이 곧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조건, 이란의 핵물질과 지하 핵시설에 대한 검증, 미국의 제재 해제 범위,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며 내세웠던 목표와 실제 종전 협상에서 요구할 목표 사이에 간극이 커질수록 워싱턴은 국내 정치적으로 ‘후퇴’가 아닌 ‘성과’라는 설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앞으로의 핵심은 미국이 얼마나 많은 목표를 포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어느 수준의 합의를 ‘승리’라고 선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목표를 낮추는 것은 외교적으로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당초 제시했던 강경한 목표와 비교할 경우 미국의 대이란 전략이 사실상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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