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계 최대 협곡 '마리너 계곡'에서 고대 단층 재활성화 확인, 2021년 화성 지진 기록 분석
- 판구조 운동 없는 화성에서도 지각 변형 지속, 행성 냉각과 화산지대 하중 등이 원인으로 추정
수십억 년 전 형성된 화성의 거대한 협곡 아래에서 지금도 지각이 움직이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지구와 같은 판구조 운동이 없는 화성에서도 오래된 단층이 다시 움직이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4일 소셜미디어 X의 Black Hole 계정에는 화성의 마리너 계곡(Valles Marineris)에서 현재도 지질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지난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됐다.
마리너 계곡은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협곡 지형이다. 길이는 약 3,900㎞에 달하며, 가장 넓은 곳의 폭은 약 600㎞, 깊이는 9㎞를 넘는다. 지구의 그랜드캐니언과 비교하면 최대 길이는 약 9배, 폭은 20배 이상, 깊이는 약 5배에 이른다.
이 협곡은 지구의 그랜드캐니언처럼 주로 강물의 침식으로 형성된 지형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화성의 거대한 화산지대인 타르시스(Tharsis)가 형성되고 주변 지각에 응력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지표가 늘어나고 갈라지면서 협곡이 발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마리너 계곡은 화성의 오래된 지질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협곡을 형성한 단층이 현재도 움직이고 있는지는 직접적인 지진학적 증거가 부족했다.
연구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InSight)가 2021년 8월 25일 관측한 화성 지진 'S0976a'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지진은 인사이트 착륙선에서 화성 반대편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탐사 임무 중 서반구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드문 지진이었다.
연구진은 지진파가 화성 내부를 통과해 인사이트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파형과 진폭, 진동 방향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진이 마리너 계곡 서쪽 지역의 지하 약 20~40㎞ 깊이에서 발생했으며, 가파르게 기울어진 단층을 따라 암석이 수평 방향으로 어긋나는 주향이동단층(Strike-slip Fault) 운동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주향이동단층은 단층을 경계로 양쪽 지각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구조다. 지구에서도 이러한 단층 운동은 지진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연구진은 지진의 원인이 운석 충돌이나 산사태일 가능성도 검토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가정한 모형으로는 관측된 지진파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지진 발생 이후 촬영된 위성영상에서도 해당 규모의 진동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충돌구나 대규모 산사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마리너 계곡 아래에 존재하는 오래된 단층이 현재의 지각 응력에 의해 다시 움직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연구를 이끈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정훈 송(Jung-Hun Song) 연구원은 마리너 계곡이 태양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질 구조 가운데 하나이지만, 지금까지 단층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마리너 계곡이 단순히 과거의 지질 활동을 간직한 지형이 아니라, 지하 깊은 곳의 단층이 지금도 움직이며 화성 지진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화성이 지구와 다른 지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여러 지각판이 이동하고 충돌하거나 서로 멀어지면서 지진과 화산 활동이 발생한다. 반면 화성은 지구와 같은 전 지구적 판구조 운동이 확인되지 않은 행성으로, 외곽의 암석권이 하나의 껍질처럼 작용하는 '정체형 암석권(Stagnant Lid)' 구조를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화성 내부에는 지각을 변형시키는 힘이 남아 있다. 연구진은 행성이 장기간 냉각되면서 발생하는 수축 응력과 타르시스 화산지대의 거대한 하중, 마리너 계곡 형성 및 침식에 따른 국지적인 응력 변화 등이 오래된 단층의 재활성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화성에서 새로운 판구조 운동이 시작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된 지각의 약한 부분이 현재의 응력 조건에서도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통해 화성의 지각 활동이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인사이트 탐사 자료에서는 앞서 케르베로스 포사이(Cerberus Fossae)와 엘리시움 평원 남부에서도 서로 다른 형태의 단층 운동이 확인된 바 있다.
마리너 계곡에서는 수평 방향의 주향이동단층 운동이, 케르베로스 포사이에서는 지각이 벌어지는 정단층 운동이, 엘리시움 평원 남부에서는 지각이 압축되는 역단층 운동이 각각 분석됐다. 이는 화성의 지각이 행성 전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응력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이미 종료된 우주탐사 임무의 관측자료가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NASA의 인사이트 탐사선은 2018년 화성에 착륙해 지진과 행성 내부 구조를 관측했으며, 2022년 12월 임무를 종료했다. 그러나 탐사선이 수집한 지진 데이터는 지금도 화성 내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 공동저자인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김도연(Doyeon Kim) 조교수는 S0976a 지진파가 화성의 핵을 통과하면서 행성의 깊은 내부를 조사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제는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단층 활동까지 설명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협곡 아래에서 지금도 암석이 움직이고 있다는 발견은 화성을 단순히 지질 활동이 끝난 행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새로운 근거를 제시한다. 지표에서는 변화가 거의 보이지 않더라도 행성 내부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응력이 지진으로 방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화성뿐 아니라 지구와 다른 지각 구조를 가진 달과 다른 암석형 천체의 지질 활동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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