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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조직…해삼 연구가 던진 ‘생명의 경계’에 대한 질문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05.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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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 후 수주가 지난 프솔루스 파브리치(Psolus fabricii)의 관족이 치유되어 생존하고 있다. [사진=에멀린 몽고메리 (머시에 연구소, MUN)]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는 2026년 5월 27일, 해삼 조직이 수년 동안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현상을 다룬 연구 논문 「Natural tissue immortality: Indefinite survival of sea cucumber explants」를 발표했다. 연구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학교(Memorial University of Newfoundland)의 박사과정 연구자 사라 좁슨(Sara Jobson)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논문에는 레이철 시플러(Rachel Sipler) 등 해양생물학 연구진이 공동 참여했다. 연구진은 북대서양 해삼의 일종인 프솔루스 파브리치이(Psolus fabricii)의 절단 조직이 자연 해수 환경에서 3년 이상 살아남는 현상을 관찰하며, 이를 “자연 상태에서 확인된 최초의 조직 불멸성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재생 능력을 넘어, 생명과 죽음의 경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발견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 대상인 프솔루스 파브리치이는 극피동물에 속하는 해삼으로, 원래도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진 생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우연한 실험 과정에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관족(管足) 조직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후 추가 실험을 통해 촉수, 몸통, 관족 조직을 절단해 자연 해수 속에서 관찰한 결과, 조직은 괴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처를 치유하며 세포 활동을 지속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이 조직들이 완전한 개체로 재생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새로운 해삼으로 성장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생존 능력을 유지했다. 연구진은 조직 내부에서 세포 분화와 면역 활동, 조직 재구성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입이나 소화기관이 없는 상태에서도 해수 속에 녹아 있는 아미노산을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활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조직들은 자극에 반응해 움직이기도 했으며, 현미경 분석에서는 활발한 세포 활동이 지속되는 모습도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조직들을 “실험실 좀비(lab zombies)”라고 부른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으며, 그렇다고 완전한 개체 생명체도 아닌 독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라 좁슨 연구원은 “우리는 이 조직들이 살아 있는지, 죽은 것인지조차 단정하기 어렵다”며 “기존 생물학이 정의해 온 생명의 개념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불멸 세포’ 개념과도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사례인 헬라 세포(HeLa cells)는 인간 암세포에서 유래한 세포주로, 무균 상태의 엄격한 실험실 환경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이번 해삼 조직은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가득한 자연 해수 환경에서도 스스로 생존과 치유를 이어갔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징이 재생의학, 조직공학, 노화 연구 등에 새로운 실험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이번 발견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교의 노에 왐브뢰즈(Noé Wambrès) 연구원은 “극피동물의 재생 능력 자체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절단 조직이 독립적으로 장기간 살아남는 ‘조직 불멸성’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플로리다대학교 휘트니 해양생물과학연구소의 베로니카 힌먼(Veronica Hinman) 교수 역시 “일반적으로 조직은 몸에서 분리되면 빠르게 분해되지만, 이번 사례는 일부 조직이 예상보다 훨씬 강한 자기 유지 능력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다만 연구진은 ‘불멸’이라는 표현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까지는 장기간 노화나 세포 붕괴의 징후가 관찰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영구적인 생존이 가능한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DNA 말단 구조인 텔로미어(telomere)의 변화 여부를 분석해 세포 노화가 진행되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해양생물학의 새로운 발견을 넘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까지 다시 꺼내 들게 만들고 있다. 완전한 개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조직도 아닌 이 해삼의 작은 조각들은, 생명체가 유지되는 방식에 대해 인간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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