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언제부터 주변 환경을 '볼' 수 있었는지는 진화생물학의 오랜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눈과 같은 감각기관은 화석으로 보존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초기 동물의 시각 능력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진이 약 5억5천만~5억2천만 년 전 에디아카라기와 캄브리아기 초기 해저에 남겨진 이동 흔적(생흔화석)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 초기 동물들이 이미 주변의 빛이나 먹이와 같은 환경 신호를 감지하며 목적성을 가진 이동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동물의 시각과 감각 체계가 캄브리아기 생명 대폭발 이전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는 '초기 이동성 동물의 감각 범위를 규명한 생흔화석 연구(Trace fossils constrain the perceptual ranges of the earliest motile animals)'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연구는 왕저쿤(Zekun Wang)과 스톈윈(Tianyun Shi)을 중심으로 수행됐으며, 미국국립과학원회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2026년 6월 9일 게재됐다. 이후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의 연구 하이라이트(Research Highlight)를 통해 '고대 해저 이동 흔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시각의 증거(Earliest signs of vision recorded in ancient sea-floor tracks)'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230여 개의 생흔화석을 대상으로 이동 경로의 형태와 방향성을 정밀 분석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당시 동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까지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를 추정했다. 몸체 화석에서는 감각기관이 거의 보존되지 않지만, 이동 흔적은 동물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했는지를 보여주는 '행동의 화석'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연구진은 퍼시스턴트 호몰로지(Persistent Homology)라는 위상수학 분석 기법과 먹이 탐색 모델을 활용해 초기 동물의 감각 범위를 정량적으로 계산했다.
분석 결과 약 5억4천600만 년 전 이전의 동물들은 대부분 특별한 방향성 없이 무작위에 가까운 이동 경로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행동이 주변을 인식할 수 있는 감각 범위가 1센티미터 미만에 불과했던 매우 원시적인 감각 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시간이 지나 캄브리아기 직전으로 갈수록 이동 경로는 점차 직선적이고 목적성을 띠기 시작했으며, 먹이가 존재하는 미생물 군집이나 특정 환경을 향해 이동하는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운동 능력의 발달이 아니라 빛이나 화학 신호 등 외부 자극을 감지하는 감각 체계의 진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약 5억4천만 년 전에는 주변 약 10센티미터 범위까지 환경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으며, 캄브리아기 중기인 약 5억2천600만 년 전에는 감각 범위가 약 15센티미터까지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당시 동물의 몸길이를 고려하면 자신의 몸 크기보다 10배 이상 넓은 공간을 인식하며 이동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감각 능력의 향상이 원시적인 광수용체 또는 초기 형태의 시각 기능이 등장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감각 능력의 발달이 먹이를 효율적으로 찾고, 짝을 찾거나 위험을 회피하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면서 이후 캄브리아기 생명 대폭발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초기 동물들이 주변 환경을 더욱 정교하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생태계 내 상호작용이 복잡해졌고, 이는 다양한 신체 구조와 감각기관의 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화석으로 남지 않는 감각기관 대신 이동 흔적을 이용해 초기 동물의 인지 능력을 정량적으로 추정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위험 회피나 경계 추적 등 다양한 행동 패턴까지 분석 범위를 확대하면 초기 동물의 감각과 행동 진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성과는 눈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진화했는지에 대한 기존 가설을 보완하는 동시에 초기 동물의 감각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연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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