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가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미래가 남게 될 것인가.”
199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ú Tum)이 남긴 이 메시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벨상 공식 계정은 8월 10일 X를 통해 멘추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 가운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 대목을 소개했다. 게시물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며, 지구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존중하고 돌봐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되새겼다.
멘추는 과테말라 출신의 마야계 원주민 여성으로, 원주민의 권리와 사회정의, 평화를 위해 활동해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992년 그에게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정의와 민족·문화적 화해를 위한 투쟁”을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1992년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해였다. 당시 서구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500주년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멘추에게 그 역사는 원주민들이 식민 지배와 차별, 억압을 겪어온 500년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개인적인 영예가 아니라 원주민과 평화, 인권을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멘추가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인간과 땅, 그리고 자연의 관계였다.
그는 자신이 속한 원주민 공동체의 세계관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땅은 생명을 주는 어머니이며,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 역시 그 일부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구는 단순한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과 문화, 기억이 이어지는 근원이었다.
특히 그에게 ‘어머니 대지’는 단순히 농작물을 생산하는 토지가 아니었다. 땅에는 조상들의 기억이 남아 있고 공동체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으며, 현재의 세대가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과 공동체, 문화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의 문제였다.
멘추의 메시지가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훼손, 산림 파괴, 자원 고갈과 같은 환경 문제가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당시 그가 던진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그는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 어떤 미래가 남겠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발전이 자연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생각에는 마야 원주민 문화가 오랜 세월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담겨 있다. 자연은 인간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자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인간 역시 자연의 순환 속에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과 대비된다. 산업화 이후 인간은 자연을 생산과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막대한 자원을 이용해왔다.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토양과 수질 오염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냈다.
멘추의 메시지는 이런 상황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연을 얼마나 많이 이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돌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은 자연환경만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멘추는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력, 토지 문제, 빈곤, 여성의 권리, 민주주의와 평화의 필요성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는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무기를 내려놓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하고 모든 공동체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토지 문제는 그에게 자연과 인권이 만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강제 이주로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이 다시 자신의 땅과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토지의 재편 역시 자연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멘추의 삶 자체도 이러한 메시지와 연결돼 있다. 그는 과테말라의 극심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 가족을 잃었고, 1980년대 초 멕시코로 피신했다. 이후 국제적인 인권운동과 원주민 권리 운동에 참여하면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과테말라 정부와 게릴라 사이의 평화협정은 1996년에 체결됐다.
노벨위원회가 멘추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도 단순히 개인의 활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그의 활동을 통해 과테말라의 인종·문화적 갈등과 원주민의 권리, 환경과 자원의 분배, 빈부격차, 여성의 역할 같은 문제가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멘추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자연을 인간과 분리된 대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기반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1992년 한 원주민 여성이 노벨평화상 연단에서 던진 질문은 지금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세계가 지금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미래가 남게 될 것인가.”
그 질문은 특정 시대나 특정 지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와 환경, 평화와 인권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오늘날의 세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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