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대규모 신규택지와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주택의 절대적인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한국의 고질적인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놓고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새 아파트의 가격이 기존 주택보다 높게 형성되고, 분양가 자체가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공급 확대→가격 안정’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아파트가 몇 만 가구 공급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실제 그 주택을 구입하거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왜 집을 사기 어려운가
정부의 공급 확대 논리는 분명하다. 주택이 부족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면 수급 불균형이 완화돼 가격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임기 내 부담 가능한 공적 주택 110만호를 공급하고, 2026년에도 주거비 부담이 낮은 공적 임대주택을 최소 15만2천호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특화주택과 청년월세 지원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되는 주택의 가격과 소유구조’이다.
민간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한다고 해서 그 주택이 모두 청년과 무주택 서민에게 구입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토지가격과 건축비가 높은 서울에서는 새 아파트가 기존 아파트보다 높은 가격에 공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 5월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전용 84㎡의 최근 1년 평균 분양가는 21억3천608만원까지 올라갔다. 전년 같은 달보다 32.13% 상승한 수준이다. 서울의 3.3㎡당 평균 분양가도 6천355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사실과 ‘청년이 살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이 공급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새 아파트 공급이 곧 집값 하락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
주택 공급 확대가 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장기적으로 주택 재고가 충분해지면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급 과정에서 토지가격과 건축비가 상승하거나, 역세권·직주근접·학군 등 선호지역에 공급이 집중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새 아파트가 기존 주택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되면 주변 기존 아파트의 가격 기준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새 아파트가 희소한 지역에서는 신축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기존 주택도 ‘신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실제로 2026년 서울에서는 중하위권 지역의 신축 아파트 분양권·입주권 가격이 15억~18억원 수준까지 올라가는 사례가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뿐 아니라 주변 시세 상승과 신축 아파트 희소성이 맞물리면서 신축이 해당 지역의 가격을 선도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따라서 ‘공급량’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어떤 가격으로 공급되는지, 누가 구입할 수 있는지, 분양 이후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핵심 문제는 ‘집의 숫자’만이 아니다
한국의 주거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주택가격과 가계소득 사이의 격차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5’에 따르면 중위 주택가격을 중위 연소득으로 나눈 PIR은 2000년대 중반 약 4배 수준에서 2024년 6.3배까지 높아졌다. PIR은 주택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에 비해 주택가격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득계층별 격차이다.
통계청 자료에서 2023년 저소득층의 PIR은 8.7배로 중위소득층 6.3배, 고소득층 5.7배보다 높았다. 주택가격이 상승할수록 소득이 낮은 계층이 주택 소유에서 더욱 멀어지는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새 아파트가 생겼다’는 뉴스가 아니라 ‘내가 그 집을 살 수 있다’는 현실이다.
월급만으로 집을 사기 어려운 사회
한국의 주택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주택이 노동소득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간 가처분소득이 수천만원인 청년 가구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장기간의 저축만으로는 현실적인 접근이 어렵다.
결국 부모의 자산, 기존 주택의 처분 여부, 상속·증여, 금융자산, 대출 가능 규모 등이 주택 구입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도 약해진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해 월급을 받는 것만으로는 주거자산을 형성하기 어렵고, 이미 자산을 가진 가구의 자녀가 다시 주택시장에 진입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가 노동의 결과로 얻는 생활 기반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자산을 물려받아야 접근하기 쉬운 자산으로 변한다면 이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된다.
분양가가 오르면 ‘공급 확대’의 효과도 약해진다
최근 서울의 분양가 흐름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2026년 5월 서울 민간아파트 전용 84㎡ 평균 분양가는 21억원을 넘어섰고, 일부 고분양가 단지의 분양가격이 평균을 크게 끌어올렸다. 6월에는 서울 전용 84㎡ 평균 분양가격이 19억5천만원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전국 민간아파트의 6월 평균 분양가도 3.3㎡당 2천828만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물론 이러한 통계는 특정 기간에 공급된 단지의 입지와 상품 구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평균 분양가 상승만으로 ‘공급이 집값을 올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급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가격 접근성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주택의 원가가 높고 선호지역에 대한 수요가 강하다면 새로 공급되는 주택 역시 높은 가격에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공급 확대’는 틀렸나
그렇지는 않다.
주택 공급은 분명 필요하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가구 수와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거나 특정 지역의 주택 재고가 노후화됐다면 신규 공급은 필요하다.
문제는 공급을 주거정책의 출발점이 아니라 종착점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국토부의 2026년 계획에는 공공임대주택 확대뿐 아니라 청년특화주택, 청년월세, 출산가구 지원, 주거급여, 취약계층의 주거상향 지원 등이 함께 포함돼 있다.
즉 공식적인 정책 방향은 단순한 민간 아파트 공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실제 시장에서 체감되는 정책 효과를 높이려면 ‘몇 호를 공급할 것인가’보다 ‘누구에게 어떤 가격으로 공급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 강요’가 아니라 주거 선택권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정책의 목표를 반드시 ‘내 집 마련’으로만 설정할 필요가 있는지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택 소유가 안정적인 주거의 유일한 방법이 되는 사회에서는 집값이 오를수록 무주택자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와 장기임대주택이 충분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청년이 20~30년 동안 빚을 갚아야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소득에 비례하는 합리적인 임대료를 내면서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주거 문제의 상당 부분을 완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토부가 임기 내 공적 주택 110만호를 공급하고 장기공공임대 재고율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은 민간 분양 중심의 공급정책과 구별되는 중요한 축이다.
‘새 아파트’보다 중요한 것은 ‘부담 가능한 주택’
한국의 주거정책은 오랫동안 주택을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할 것인가”로 정책의 기준을 전환해야 한다.
새 아파트 10만호가 공급되더라도 그중 상당수가 고가 분양주택이라면 무주택 청년에게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등 공공성이 강한 주택, 소득에 맞춰 임대료가 책정되는 주거가 충분히 공급된다면 체감되는 주거 안정 효과는 훨씬 클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과 ‘자산시장’을 함께 봐야
주택가격은 공급량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금리, 대출규제, 세제, 토지가격, 건설비, 인구구조, 지역별 일자리와 교통, 학군, 투자수요, 주택에 대한 기대가격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특히 서울처럼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화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단순한 주택 공급만으로 수요 자체를 분산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서울에 대규모 아파트를 추가 공급하면서 동시에 수도권으로 일자리와 자본이 계속 집중된다면, 공급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특정 선호지역의 가격 상승을 막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2026년 7월 KB국민은행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05% 상승했고, 중랑·강북·성북·노원·동대문 등 강북권에서도 높은 상승률이 나타났다. 가격 상승이 강남권에만 국한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주택시장의 문제가 단순한 ‘강남의 공급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집값 상승’이 아니라 ‘주거 안정’이어야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신규택지와 공급 확대 정책은 ‘주택 공급’과 ‘주거 안정’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주택은 많아졌는데 집값이 올라 청년이 살 수 없다면 공급정책의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기 어렵다.
새 아파트가 늘었는데 기존 아파트까지 가격이 함께 오르고, 청년의 소득보다 주택가격이 훨씬 빠르게 상승한다면 주거의 양적 공급과 주거 안정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남는다.
따라서 앞으로의 주택정책은 최소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새로 공급되는 주택을 누가 살 수 있는가.
둘째, 그 가격은 노동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
셋째,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이 없다면 7만3천호든 10만호든 공급 숫자만으로 한국의 주거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닥치고 공급’에서 ‘감당 가능한 주거’로
이재명 정부의 주택정책이 앞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급 속도만큼 가격과 소득의 관계를 정책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아파트를 짓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아파트를, 어떤 가격에, 누구를 위해 공급하느냐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평생 대출을 끌어안고 집을 사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노동소득만으로도 안정적인 주거를 선택할 수 있고, 집을 사지 않더라도 장기간 거주할 수 있으며, 부모의 자산 규모가 주거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은 ‘공급 확대’와 ‘가격 안정’, ‘공공임대 확대’,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 완화’, ‘수도권 집중 완화’를 하나의 정책으로 묶어야 한다.
주택 100만호를 더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집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활공간으로 기능하느냐다.
집이 투자상품으로서 계속 가격이 상승하고, 청년의 월급이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공급해도 주거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의 주택정책이 답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월급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여야 한다.
그것이 ‘닥치고 공급’이라는 양적 접근을 넘어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진짜 주거정책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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