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당뇨병학회서 지방세포의 자연사멸 유도하는 주사제 연구 결과 공개
- 2상 임상 분석서 마지막 투여 4주 후 내장지방 평균 12.01% 감소, 위약군은 5.68% 증가
- 기존 비만 치료제와 다른 작용 원리 주목, 장기 안전성과 체중 재증가 억제 효과는 추가 검증 필요
지방세포의 크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세포 자체를 제거하는 새로운 비만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식욕을 조절하거나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지방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초기 임상시험에서 복부 내장지방 감소 효과가 관찰됐다.
과학 정보 계정 '스마트 사이언스(Smart Science)'는 최근 공식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실험용 주사제 'CBL-514'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지방세포를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포의 자연사멸을 유도해 지방조직을 줄이는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관련 연구는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당뇨병학회(EASD) 연례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연구진은 CBL-514를 투여받은 참가자들의 복부 내장지방이 마지막 치료 4주 후 평균 12.01%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결과는 초기 임상시험의 일부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분석으로, 장기간 체중 감량이나 당뇨병·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지방세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멸시키는 새로운 접근
일반적인 체중 감량 과정에서는 지방세포에 저장된 지방이 줄어들면서 세포의 크기가 작아진다. 식사량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비하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 사용되는 원리다.
최근 널리 사용되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역시 식욕과 포만감 등을 조절해 음식 섭취를 줄이고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 체중과 체지방을 줄이는 데 효과를 보이지만, 지방세포 자체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은 아니다.
CBL-514는 이와 다른 원리로 개발되고 있다.
이 약물은 지방세포에서 세포자멸사(Apoptosis)라고 불리는 프로그램된 세포사멸을 유도하도록 설계됐다. 세포자멸사는 손상되거나 불필요해진 세포가 일정한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 제거되는 현상이다.
연구진은 CBL-514가 지방세포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지방조직의 부피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체중 감량 방식이 지방세포에 저장된 지방의 양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치료법은 지방세포의 수 자체를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지방세포가 제거된다는 사실만으로 그 효과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기간 지방조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른 부위의 지방 축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임상시험에서 내장지방 평균 12% 감소 확인
이번 연구에서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복부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장지방의 변화다.
연구진은 CBL-514의 기존 2상 임상시험 두 건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자기공명영상(MRI)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참가자들을 분석했다. 치료 후 추적관찰 자료가 있는 40명 중 23명은 CBL-514를, 17명은 위약을 투여받았다.
분석 결과 CBL-514 투여군의 내장지방 부피는 마지막 치료 4주 후 치료 전보다 평균 12.01% 감소했다. 반면 위약군에서는 평균 5.68% 증가해 두 집단 사이에 17.69%포인트의 차이가 나타났다.
이후 추적관찰에서도 감소 경향은 이어졌다. 마지막 투여 후 8~12주 시점에 CBL-514 투여군의 내장지방은 치료 전보다 평균 10.45% 적었지만, 위약군에서는 평균 11.76% 증가했다.
이번 분석에서 내장지방은 MRI로 측정한 복부의 특정 영역을 기준으로 평가됐다. 따라서 내장지방 12% 감소라는 수치를 복부 전체 지방이나 체중이 같은 비율로 감소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CBL-514의 지방 감소 효과가 피부 바로 아래의 피하지방뿐 아니라 내장지방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내장지방 감소가 중요한 이유…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에 주목
내장지방은 복부의 장기 주변에 쌓이는 지방이다. 피부 아래에 축적되는 피하지방과 달리 간과 장 등 내부 장기 주변에 위치하며, 대사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장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인슐린 저항성과 만성 염증, 혈중 지질 이상 등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2형 당뇨병과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여러 건강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비만 치료에서는 단순히 체중을 얼마나 줄였는지뿐 아니라 지방이 어느 부위에 축적돼 있고, 치료를 통해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도 중요하게 평가된다.
CBL-514가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세포를 직접 표적으로 삼는 방식이 내장지방 감소에 효과를 보인다면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장지방이 감소했다는 사실과 실제 질병 발생 위험이 낮아졌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내장지방의 부피 변화를 확인한 것으로, CBL-514가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예방하거나 심혈관질환 발생을 줄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혈당과 혈압, 혈중 지질 등 대사 지표의 변화와 장기적인 건강 결과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피하지방 감소 효과도 확인…새로운 치료 가능성
CBL-514의 지방 감소 효과는 앞서 진행된 피하지방 관련 임상시험에서도 관찰됐다.
2025년 국제학술지 '에스테틱 서저리 저널(Aesthetic Surgery Journal)'에 발표된 2상 임상시험에서는 복부 피하지방 감소 효과가 평가됐다.
마지막 치료 8주 후 평가에서 CBL-514 투여군의 69.6%가 복부 피하지방 부피를 150mL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 같은 시점 위약군에서는 해당 기준을 충족한 참가자가 없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CBL-514가 특정 부위의 지방을 줄이는 새로운 주사 치료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피하지방 감소와 내장지방 감소는 서로 다른 평가 항목이다. 앞선 피하지방 임상시험 결과가 이번 내장지방 연구의 효과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각각의 효과와 안전성을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비만 치료제 중단 후 체중 재증가 문제에도 관심
연구진이 주목하는 또 다른 가능성은 비만 치료제 사용을 중단한 뒤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문제다.
GLP-1 계열 약물은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지만 치료를 중단하면 식욕이 회복되고 체중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 장기적인 체중 관리가 비만 치료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CBL-514 연구진은 지방세포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 체중 재증가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CBL-514를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와 함께 사용했을 때 내장지방 감소 효과가 커지고, 티르제파타이드 투여 중단 후 체중 재증가가 줄어드는 결과가 관찰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 CBL-514가 사람에게서 비만 치료제 중단 후 체중 재증가를 장기간 억제한다는 임상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지방세포를 제거하더라도 남아 있는 지방세포가 커지거나 새로운 지방세포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장기적인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
안전성 검증은 계속…3상 임상시험 진행
새로운 작용 원리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치료제로 사용되기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보고된 임상시험에서는 주사 부위의 통증과 부기, 발적 등이 주요 이상반응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경증에서 중등도 수준이었으며 일시적인 반응으로 보고됐다.
연구진은 초기 시험에서 전반적으로 양호한 내약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여 인원과 관찰 기간이 제한된 만큼 드물게 발생하는 이상반응이나 장기간 반복 투여에 따른 영향까지 확인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지방세포를 사멸시키는 약물인 만큼 표적 세포에 대한 선택성과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 지방 감소 이후의 대사 변화 등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CBL-514는 현재 3상 임상시험 단계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더 많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돼야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지방세포를 직접 표적으로 삼는 치료…비만 관리의 새로운 방향 될까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상태를 넘어 여러 대사질환과 관련되는 복합적인 건강 문제다.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 식사환경, 호르몬과 대사 기능 등이 함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료 역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CBL-514는 이러한 비만 치료 분야에서 기존 약물과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식욕을 억제하거나 에너지 섭취를 줄이는 대신 지방세포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지방세포를 제거하는 기술이 곧 비만을 완치하는 방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만은 지방세포의 수뿐 아니라 에너지 섭취와 소비, 신체의 대사 조절 기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새로운 비만 치료법이 완성됐다는 데 있기보다, 지방조직을 직접 조절하는 방식이 사람에게서도 효과를 보일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진행될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지방 감소 효과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실제 대사질환 위험을 낮출 수 있는지,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지방세포를 작게 만드는 것을 넘어 세포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접근이 비만 치료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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