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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억에서 세계의 골목까지… 『우송문학』이 넓혀온 문학의 길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10.22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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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호 『초록빛이 한 뼘씩 길을 넓혀간다』 10월 24일 발행 예정
  • 현대시조 창작강좌·여행기 특집·작가 조명, 창작과 배움, 교류의 시간 담아
  • 2006년 창간 이후 스물한 번째 결실, 일상의 경험을 함께 읽는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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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 = 특별취재반] 거미가 나뭇가지 사이에 그물을 짠다. 그 정교한 움직임을 바라보던 시인은 문득 자신의 살아가는 솜씨를 돌아본다. 다른 지면에서는 캐나다의 성당을 찾은 여행자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자신이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도록 먼 길을 달려와 주었던 사람. 낯선 나라에서 마주한 아름다움이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랑을 뒤늦게 깨우는 순간이다.


오는 10월 24일 발행 예정인 『우송문학』 제21호 『초록빛이 한 뼘씩 길을 넓혀간다』에는 이처럼 시선이 깊어지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작은 생물을 관찰하는 일에서 삶을 성찰하고, 먼 곳으로 떠나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개인의 경험이 다른 이의 마음에 닿는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이 여러 장르에 걸쳐 펼쳐진다.


우송문학회(대표 이성자·회장 임순희)가 펴내는 이번 호는 2006년 창간호 『아름다운 만남』 이후 이어온 스물한 번째 결실이다. 시와 시조, 동시, 동화, 수필뿐 아니라 가사동화와 가사수필까지 수록했다. 여기에 현대시조 창작강좌, 여행기 기획특집, 회원조명, 문학상 수상자 초대석, 문학기행 기록을 더했다.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의 삶을 읽으며, 다시 창작을 배우는 문학 공동체의 활동을 한 권에 담은 구성이다.

 

이번 호를 관통하는 관심은 시간과 생명, 그리고 관계다. 나이 들어가는 몸과 여전히 설레는 마음,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기억, 자연의 움직임과 그 앞에 선 인간의 질문이 지면 곳곳에서 만난다. 책 제목의 ‘초록빛’은 그렇게 읽을 때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글쓰기가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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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임진강」 시비 앞에서 제자들에게 강의 중인 전원범 시인. 우송문학회 제공


책의 문을 여는 작품은 전원범 시인·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의 권두시 「강 하나 건너는 것」이다. 시는 삶의 무게와 마음의 빚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묻는 데서 출발한다. 산다는 일을 높고 낮은 산들을 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죽음을 앞에 놓인 강 하나를 건너는 일에 겹쳐놓는다.

 

삶과 죽음을 자연의 지형으로 옮긴 시선에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체감이 배어 있다. 저마다 제 빛깔로 살아가던 이가 어느 날 서둘러 떠나는 장면은 독자에게도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이 권두시는 뒤이어 펼쳐질 여러 작품을 읽는 하나의 입구가 된다. 지나온 세월을 기록하는 일, 사라지는 존재를 기억하는 일,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것에 눈길을 주는 일이 왜 필요한지 조용히 묻는다.


임순희 회장의 발간사 「저마다의 나무를 키우자」는 그 질문을 창작의 자세로 이어간다. 임 회장은 농부가 논을 돌보듯 작가 역시 경험을 숙고하고 단어를 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에서 얻은 메시지를 자신의 경험 안에 녹이고 상상력으로 가꾸어야 균형 잡힌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글쓰기의 의미를 찾는 곳은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는 위로와 온기다. 한 편의 글이 누군가의 차가운 몸과 마음을 덥힐 수 있다면, 언어를 가꾸는 수고에도 의미가 생긴다. 이러한 발간 취지는 이번 호에 실린 작품과 작가들의 삶을 함께 읽게 한다.


서연정 시조시인의 지상창작강좌 「현대시조에 대한 소고(小考)」는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와 직접 써보려는 독자를 잇는다. 시조의 개념과 명칭의 유래, 문학 장르로서의 성격을 살피고 3장 6구 12음보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종장을 쓰는 방법과 고시조·현대시조 감상도 함께 다룬다.

 

이 강좌의 실용성은 형식에 대한 설명이 작품 감상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시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짧은 문장 안에서 호흡이 어떻게 나뉘고 시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창작자에게는 정형의 틀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회원들의 시조 작품을 함께 수록한 구성도 강좌와 창작을 나란히 읽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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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 앞에서, ‘우송문학회’ 제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우송문학회]

 

기획특집에서는 문학의 시야가 세계의 길 위로 펼쳐진다. 윤재훈의 「세계를 걸으며, 문명을 읽다-프롤로그」와 장미경의 「나이야 가라!」는 서로 다른 문체와 경험으로 여행이 삶을 바꾸는 방식을 보여준다.

 

윤재훈은 여행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낯선 골목의 냄새와 시장의 소음, 사막의 침묵과 새벽 기차의 흔들림이 여행자의 감각을 깨운다. 지도 속 지명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을 얻고, 책에서 읽었던 역사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다.

 

그의 글에서 길은 질문이 생겨나는 장소다. 전쟁이 반복되는 까닭, 나라와 지역마다 삶의 조건이 다른 이유, 다른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여행의 경험을 따라 이어진다. 바깥세계를 오래 걸을수록 한국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익숙한 사회를 새로운 거리에서 살펴보고, 다른 삶을 통해 자부심과 함께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아테네와 명사산, 핑야오 등의 사진을 곁들인 이 글은 앞으로 이어갈 여행 기록의 방향을 밝힌다. 어디를 방문했는지에 더해 그곳에서 무엇을 물었고, 그 질문이 자신의 삶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함께 나누겠다는 취지다. 독자 역시 여행자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자신의 시선을 점검하게 된다.


장미경의 「나이야 가라!」는 친구들과 떠난 캐나다·미국 자유여행을 생활의 언어로 풀어낸다. 휴대전화 대화방에서 시작된 여행 계획, 직접 해야 하는 예약과 준비, 낯선 언어에 대한 걱정, 숙소에서 밤늦도록 이어지는 수다가 여정의 생생한 표정을 만든다.

 

이 글이 오래 머무는 곳은 화려한 관광지 너머에 있다. 아름다운 성당 안에서 여행자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자신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의 수고를 그때는 당연하게 여겼다는 자각이 뒤따른다. 좋은 풍경을 볼수록 함께 오지 못한 사람이 떠오르는 마음은 여행의 기쁨과 미안함을 한 장면 안에 담는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시간이 남긴 변화도 돌아본다. 사진 속 추억은 선명하지만 관계는 달라지고, 세월은 마음을 주춤거리게 한다. 나이를 밀어내고 싶어 하는 제목의 유쾌함 아래에는 나이 듦을 인정해야 하는 마음도 흐른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기억은 힘든 날 꺼내볼 수 있는 위안으로 남는다. 이 글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용기와 자기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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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들과 문학기행을 하는 모습 [사진=우송문학회 제공]

 

‘회원조명’은 시선을 한 사람의 내면으로 옮긴다. 장유심의 「천수답 모」와 이성자의 「여전히 다 알 수 없는 사람-그래서 더 깊은 장유심 작가」를 나란히 실어, 작가 자신의 기억과 그를 지켜본 이의 시선을 함께 보여준다.

 

장유심은 「천수답 모」에서 글을 배우고 작가로 성장해온 시간을 비와 벼의 이미지로 되짚는다. 어린 시절 만난 교사와 문학의 길로 이끈 스승들이 서로 다른 비로 기억된다. 모가 자라 낟알을 맺기까지 여러 번의 비와 바람을 거치듯, 한 사람의 문장도 여러 만남과 흔들림 속에서 여물어간다는 인식이다.

 

이성자의 글에서는 깻잎장아찌를 건네는 일상의 장면이 인물 이해의 출발점이 된다.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었던 말을 기억하고 음식을 마련해오는 마음, 햇빛 알레르기를 견디며 밭을 가꾸는 수고, 글 속에 담긴 아버지의 삶을 읽으며 필자는 자신이 알던 장유심을 다시 바라본다.

 

늘 밝게 웃는 사람에게도 깊은 슬픔과 사연이 있다는 발견이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 이 글은 작가 소개를 넘어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에 관한 성찰로 읽힌다. 두 편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이번 호는 작품과 삶, 창작자와 동료 사이의 관계를 한층 가까이 보여준다.


2025년 우송문학상 수상자 초대석에는 김능자 시인의 수상소감과 수상작 「각시거미」, 이성자의 심사평을 담았다. 「각시거미」는 거미가 그물을 짜고 먹이를 붙잡고 알집을 마련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정교하고 민첩한 생명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화자의 시선은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성자는 심사평에서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점과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주목했다. 김능자의 수상소감은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우리말을 익힌 기억, 전쟁과 보릿고개를 지나온 삶, 자녀들을 키운 뒤 문학교육을 받으며 이어온 글쓰기가 그 바탕에 놓여 있다. 작품과 수상소감을 함께 읽으면 시 속의 세심한 관찰이 오랜 생활의 경험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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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들과 문학기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의 차량 모습 [사진=우송문학회 제공]

 

회원작품 지면에서는 자연과 역사, 가족과 일상의 경험이 저마다 다른 문장으로 펼쳐진다.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눈길부터 시대의 상처를 기억하는 목소리까지, 작가들이 붙잡은 구체적인 장면들이 이번 호의 폭과 깊이를 이룬다.


임순희는 「멀구슬나무」에서 은색 구슬처럼 빛나는 열매와 황혼을 겹쳐 저무는 마음에도 불이 켜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우물가 백일홍(간지럼 나무)」에서는 나무 위 소년과 물 긷는 소녀의 모습을 우물 속에 담아, 유년의 풋풋한 정경을 되살린다.

강우인은 「난 괜찮아」에서 신앙에 기대어 고난을 견디는 마음을, 「섬」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누구에게 닿지 못하는 고독을 드러낸다. 「언제라도 또 가고 싶은 그곳 온 한방병원」은 의료진의 돌봄과 환자들 사이의 친교를 통해 아픈 몸 곁에서 마음도 회복되는 풍경을 전한다.

 

김양순의 「바닷새 전설」은 바닷새와 파도, 기러기와 노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이미지로 바다의 정경을 펼친다. 「가을을 바라보며」에서는 자연에 기대어 하루를 어루만지는 충만함을, 「노을꽃」에서는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며 저녁빛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조의연은 「달의 뒤뜰」에서 하늘의 달과 물속의 달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모습을 통해 실재와 반영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왕매미 울다」에서는 짧은 생을 울음으로 밀어 올리는 생명력을, 「물안개」에서는 강가의 유년과 머슴살이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불러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다.

 

이상인은 「마추픽추에 대한 물음」에서 잉카 유적의 별과 꽃을 바라보며 사라진 이들의 목숨과 영혼이 어디에 머무는지 묻는다. 「잉카제국 유적지 야생화」에서는 거친 산비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시 피어나는 꽃을 포개어, 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이어지는 삶을 바라본다.

 

정숙인은 「시절 인연」에서 상하이에서 사 온 낡은 모자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물에 깃든 인연을 돌아본다. 「간극」은 서로 다른 경험과 언어 사이에서 어긋나는 소통을 짚고, 「일일초」는 캄보디아 바이욘 사원에서 만난 꽃과 미소를 통해 흩어진 마음이 평정을 찾는 순간을 담는다.

 

조경환의 「전원범 시인」은 제자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주는 스승의 모습을 그린다. 「비곗덩어리」에서는 관광 마차를 끄는 말의 노동을 바라보다 타인의 수고를 누리는 자신의 자리까지 되묻는다. 짧은 시 「아내」는 먼 훗날의 아픔까지 헤아리는 반려자의 사랑을 응축한다.

 

이혜숙은 두 작품으로 오월의 희생을 기억한다. 「나는 서 있다」에서는 1980년 5월 총격에 쓰러진 소녀의 목소리를 빌려 학교와 친구,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전한다. 「빵이 울고 있다」에서는 마지막 끼니가 된 단팥빵 조각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함을 담아, 역사의 상처를 한 가족의 구체적인 슬픔으로 되살린다.


김능자의 「돌배꽃 잎새」는 맑은 꽃빛에 마음까지 씻기는 교감을 섬세하게 그린다. 「연흔」에서는 모래 위 물결의 자취를 연민과 그리움의 흔적으로 읽고, 「비눗방울」에서는 억울함과 서러움, 후회와 삶의 무게를 하늘로 띄워 보내고 싶은 소망을 풀어낸다.

 

조현아는 「대밭에서」에서 이슬과 새, 유년의 기억을 지나 하늘을 향해 솟는 죽순의 생명력을 바라본다. 「내소사에서」는 문우들과 떠난 길의 들뜸 속에 과거의 기억과 홀로 마주하는 순간을 담고, 「단풍잎」은 붉게 타오르는 잎에 열정과 인연을 내려놓는 마음을 겹친다.

 

정관웅은 「하루의 중간에서」의 낮잠을 하루를 끝까지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되돌려놓는 시간으로 해석한다. 「끝을 미루는 기도」에서는 의심과 흔들림을 성급히 닫지 않는 태도를, 「시간이 먼저 우러난다」에서는 찻잎이 풀리는 동안 저무는 자신의 시간을 더듬는 감각을 보여준다.

 

서정화는 「풍경소리」에서 산사의 적막을 흔드는 소리를 내면의 속울음으로 듣는다. 「등대」는 추억과 아픔을 한 줄기 빛으로 세우고, 「연민3」은 잡은 손을 잃고도 끊어낼 수 없는 그리움을 먼 물길에 실어 보낸다. 짧은 시행과 여백 속에 감정을 눌러 담은 작품들이다.

 

이수희의 「귀에 고인 바다」는 이국의 음악으로 잠시 해변이 된 방과, 화면을 끈 뒤 돌아오는 도시의 고립을 대비한다. 「6칸의 창가」에서는 책장의 목소리를 빌려 책과 사람을 기다리는 공간을 그린다. 비어 있는 칸이 독서와 대화, 쉼의 자리로 채워지는 상상이다.

 

윤재훈은 「각황전 기둥주름」에서 오래된 사찰 기둥에 쌓인 세월과 여전히 깊어지는 인간의 번민을 마주한다. 「물의 문장」은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 떼와 물, 빛과 바람이 함께 만드는 생명의 움직임을 펼쳐 보인다. 「여시아문」에서는 파도와 나이테에도 귀를 기울이며 자연의 소리를 삶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이오봉의 「폰 속에 뜬 아침 해」는 휴대전화 화면 속 손자의 몸짓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움을 잇는다. 「담쟁이덩굴」은 아이들과 돌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에서 어느새 성년이 된 손주들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무꽃의 환성」에서는 보관해둔 무에서 피어난 꽃을 통해 어머니의 살림에 대한 기억과 뜻밖의 생명력을 함께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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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회원들이 문학기행 후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사진=우송문학회 제공] 

 

시조란에서 차상영은 「민낯의 기다림」에서 감이 익는 시간을 서두르는 마음에 비추며 기다림도 함께 여물어야 함을 말한다. 「하루가 새롭다」에서는 거듭 꽃을 피우는 일일초의 생기를, 「햇살 흥정」에서는 겨울의 먼지를 털어내고 봄과 낯선 기척에 마음을 열어주는 순간을 시조의 호흡으로 담는다.

 

서연정의 「돌아온 토르소」는 잘린 나무의 어깨에서 다시 피어날 소망을 사랑의 언어로 감싼다. 「야생화」는 바람과 먼지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꽃의 모습을, 「그 시절을 살아낸 밥」은 쏟아지는 봄의 아름다움과 견디는 힘을 짧은 시형 안에 포갠다.

 

박성애는 「겨울 강가에서」에서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강의 침묵 속에 그리움을 건넨다. 「아버지의 사랑」에서는 말없이 일하고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의 생애를 돌아보며, 뒤늦게 알아본 사랑이 자신의 내면에 깊은 강으로 남아 있음을 노래한다.


동시 지면에서 정희정은 「꽃게」의 옆걸음과 물총을 아이와 벌이는 장난처럼 그린다. 「기차」에서는 창밖 풍경과 아이의 마음이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고양이 포비」에서는 다음에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고양이와의 대화를 통해 다정한 동행의 마음을 전한다.

 

김명희의 「아빠! 나가도 돼?」는 잘린 나무 둥치에서 피어난 벚꽃을 밖으로 나가 놀고 싶은 아이로 표현한다. 「고무줄 학교」는 개미 학교에 학생들이 갑자기 늘어난 상황을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초능력은 바쁘다 바뻐」에서는 전쟁을 겪는 나라의 친구들에게 위로와 약을 보내고 손을 잡아주려는 어린이의 상상력이 국경을 넘어간다.

 

이꽃별은 「ㄱ자 할머니」에서 굽은 허리에 새겨진 노동의 세월과 손주를 품는 따뜻함을 함께 바라본다. 「잉어가 사는 연못」은 아침밥을 먹으러 모이는 잉어들을 가족의 풍경으로 옮긴다. 「빨간 폭탄」에서는 부푼 고추장 통을 열다 온 집 안에 고추장이 튀는 소동을 아이의 웃음으로 풀어낸다.


양인숙의 동화 「언덕배기 할아버지」는 불과 물, 바람으로 삶의 터전을 거듭 잃는 노인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붙잡고 다시 세우려던 노력을 멈춘 뒤, 숨 쉬고 걸을 수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상실을 겪은 사람이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린다.

 

안영옥의 가사동화 「노루 집에 모인 동물들」은 산불로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은 오소리들을 숲속 이웃들이 보살피는 이야기다. 이어 사냥꾼의 총소리에 쫓겨온 멧돼지들까지 함께 품으며, 위기에 놓인 생명들이 서로를 지키는 연대를 보여준다. 운율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 속에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동물들의 절박함을 담았다.


수필에서 이성자는 「5월의 마지막 길목에서」를 통해 투병 중인 스승과 함께한 식사 자리를 돌아본다. 예전과 달리 말없이 앉아 있는 스승의 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뤄온 안부와 돌봄을 되묻는 글이다.

 

황숙자의 「단오의 추억」은 시어머니의 생일이었던 단옷날을 따라 고부간의 긴 시간을 되짚는다. 어렵게 마련한 바나나 한 개, 멀미하는 친정어머니와 먼 길을 함께 걸어온 시어머니의 배려, 마지막 배웅의 기억이 이어진다.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오래 돌보며 쌓인 정이 구체적인 일화 속에 드러난다.

 

조혜숙은 「내 인생의 유물 카드」에서 재봉틀과 식탁이 그려진 두 장의 카드를 계기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어머니가 남긴 조각보와 가족들이 둘러앉던 밥상, 이제 부부만 남은 식탁을 차례로 떠올리며, 평범해 보였던 살림의 시간이 삶을 지탱해온 기억임을 발견한다.

 

조화련의 「자연이 스승이다」는 솔잎을 따러 오른 산에서 자신이 자연에 가하는 상처를 깨닫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씨앗을 품고 계절을 준비하는 식물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조급함과 무심함을 돌아본다. 자연을 이용하러 갔다가 자연 앞에서 배우는 사람으로 시선이 바뀌는 글이다.

 

김수자의 「어린 타일공의 꿈」은 낯선 작업복 차림의 청년을 경계하던 마음이 그의 노동과 사연을 알면서 달라지는 과정을 담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뒤 기술을 익히고 의사의 꿈을 키우는 청년에게 필자는 음식을 차려주고 응원을 건넨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 편견을 걷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유심의 가사수필 「고양이님」은 무더운 날 고양이 털을 깎아주려다 벌어진 가족 간의 소동을 익살스럽게 풀어낸다. 고양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딸과 그 사이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어머니, 이를 받아넘기는 남편의 말이 가족의 달라진 풍경을 드러낸다. 웃음 속에 돌봄의 방식과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묻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을 나란히 읽으면 이번 호가 품은 관심의 넓이가 드러난다. 자연을 바라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의 기억을 더듬다 돌봄의 의미를 발견하며, 타인의 상처 앞에서 함께 살아갈 길을 묻는다. 각 작가의 개별적인 경험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유지하면서도 삶을 이해하려는 하나의 대화로 이어진다.


문학기행 기록은 작품이 태어나는 또 하나의 자리가 동료들과 나누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함께 걷는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그날의 웃음과 대화는 더욱 소중해진다. 한 권의 문학지를 지속하게 하는 힘 역시 원고 밖에서 이어지는 만남과 관심 속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송문학』 제21호는 그렇게 창작과 배움,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시간을 함께 엮었다. 각기 다른 장르와 문체를 오가면서도 자연을 오래 바라보고, 사람을 쉽게 단정하지 않으며, 지나온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가 이어진다.


책 제목처럼 길을 넓히는 일은 한 뼘씩 이루어진다. 한 편을 쓰고, 다른 이의 작품을 읽고, 함께 걸었던 시간을 다시 기록하는 동안 자기 삶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진다. 『초록빛이 한 뼘씩 길을 넓혀간다』는 그 꾸준한 변화가 남긴 스물한 번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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