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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서 시작되는 하루…페루 '치코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어업을 지키다

  • 이미선 기자
  • 입력 2026.06.2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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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 치코카가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고 있다. [사진=EBS 영상 캡쳐]

 

페루 남부 파라카스(Paracas)의 황량한 해안 절벽 위. 새벽빛이 바다를 비추기 시작하면 한 노인이 낡은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천천히 내려간다. 파도가 쉼 없이 바위를 때리는 해안에서 그는 낚싯줄을 드리우고 생계를 이어간다. 현지인들이 '치코카(Chicoca)'라고 부르는 이 어부의 일상이다.


해외 언론들은 치코카의 직업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어업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한다. 그는 어부이면서 동시에 암벽등반가이다. 안전장비 하나 없이 수십 년간 사용해 온 밧줄에 의지해 절벽을 오르내리며 물고기를 잡는다.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생명과 직결되는 작업이다.


페루 매체 라 레푸블리카(La República)에 따르면 올해 66세인 치코카는 파라카스 국립보호구역 인근 절벽에서 오랜 세월 같은 방식으로 조업해 왔다. 그가 사용하는 밧줄은 10년 넘게 손에서 놓지 않은 도구이며, 거센 파도와 미끄러운 암벽을 견디며 매일 생존의 현장으로 향한다.


치코카의 삶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의 흐름을 읽고, 조류와 바람, 물고기의 이동 경로를 몸으로 익혀왔다. 현대식 장비와 대규모 어선이 해양을 점령한 시대에도 그는 오직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다.


이 같은 전통적 어업은 페루 해안의 오랜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페루 태평양 연안 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바다 절벽과 암초 지대를 활용해 물고기를 잡아왔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해안 절벽은 배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어서 주민들은 지형에 적응한 독특한 어업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치코카가 상징하는 전통 어업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산업화된 어업과 자원 고갈, 기후 변화는 소규모 어민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페루의 다른 전통 어업 공동체 역시 남획과 환경오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수천 년 이어져 온 어업 문화의 단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그럼에도 치코카는 여전히 절벽을 내려간다.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위험한 노동이지만, 그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에게는 경이로운 풍경으로 보이는 파라카스의 붉은 절벽 아래에서, 한 어부는 오늘도 밧줄을 움켜쥔 채 바다를 향해 몸을 내민다. 빠른 효율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치코카의 존재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가장 오래된 관계, 그리고 생계를 위한 노동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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