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키워드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대지를 캔버스로 삼은 예술… 로버트 스미드슨의 '스파이럴 제티', 시간이 완성하는 작품

  • 이경희 기자
  • 입력 2026.07.08 10:58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1.jpg
▲ 1970년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에 있는 스파이럴 제티. [사진= mariangoodmangallery instagram]

 

미술관의 벽을 벗어나 자연 그 자체를 예술의 공간으로 삼을 수 있을까. 미국 현대미술가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 1938~1973)은 이러한 질문에 가장 강렬한 답을 남긴 작가다. 그의 대표작 '스파이럴 제티(Spiral Jetty)'는 거대한 자연을 캔버스로 삼아 인간과 자연, 시간의 흐름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랜드아트(Land Art)의 대표작으로 오늘날까지 세계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솔트호(Great Salt Lake) 북동쪽 로젤 포인트(Rozel Point)에 조성된 '스파이럴 제티'는 약 6,000톤의 현무암과 흙, 진흙, 소금 결정 등을 이용해 길이 약 460m, 폭 4.6m의 거대한 나선형 구조물을 만든 작품이다. 호수 위로 천천히 뻗어 나가는 나선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더욱 선명한 형태를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랜드아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대신 사막과 호수, 숲과 들판을 작업 공간으로 삼고, 흙과 돌, 물, 나무 등 자연을 재료로 활용한 새로운 예술운동이었다. 산업화와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대에 예술가들은 작품을 전시장 안에 가두기보다 자연 속으로 확장하려 했고, 스미드슨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스파이럴 제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거대한 조형미만이 아니었다. 스미드슨은 예술이 완성되는 순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계절과 기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스파이럴 제티'는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이트솔트호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이후 2002년 가뭄으로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도 수위와 염분 농도, 햇빛과 바람의 변화에 따라 색과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 붉은빛을 띠는 호수 위에 하얗게 쌓이는 소금 결정은 자연이 작품 위에 새롭게 그려 넣는 또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된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나선형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 소멸과 재생을 상징하는 오래된 형상이다. 스미드슨은 이러한 상징을 통해 인간과 자연, 시간과 우주가 하나의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재료가 아니라 예술을 함께 완성하는 공동 창작자였다.


최근 뉴욕타임스 T 매거진(The New York Times T Magazine)은 지구의 날(Earth Day)을 맞아 미국 랜드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스미드슨을 다시 조명했다. 설치미술가 케빈 비즐리(Kevin Beasley)는 "'스파이럴 제티'는 랜드아트의 포스터와 같은 작품"이라며 "랜드아트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을 "야생에서 동물을 우연히 만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쿠바계 미국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도 함께 소개됐다. 두 작가는 모두 자연을 예술의 무대로 삼았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스미드슨이 거대한 대지를 조형해 자연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멘디에타는 자신의 몸을 자연 속에 남긴 '실루에타 시리즈(Silueta Series)'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인 연결을 표현했다. 규모와 방식은 달랐지만 두 작가 모두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예술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랜드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스파이럴 제티'는 단순한 대지미술 작품을 넘어 환경예술과 생태미술, 장소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출발점으로도 평가된다. 특히 기후변화와 생태위기가 인류 공동의 과제가 된 지금,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스미드슨의 메시지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스파이럴 제티'는 완성된 조형물이 아니다. 물속에 잠기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바람과 소금, 햇빛과 시간이 끊임없이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간다. 스미드슨은 예술을 자연 속으로 돌려보냈고, 자연은 그 작품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완성해 가고 있다. 그래서 '스파이럴 제티'는 하나의 조각 작품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시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예술로 남아 있다.


ⓒ 이이티뉴스 & eet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지속가능한 여행 1] 사막의 오일머니에서 지속가능 여행의 중심으로... GCC, 2026년 세계 관광 패러다임을 다시 쓰다
  • 바다에 잠긴 2,000년의 로마 도시 '바이아이'…역사와 자연이 함께 보존한 수중 박물관
  • 캐나다 정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클레이오쿼트 사운드' 조명… 온라인상에서 열띤 호응 이어져
  • 찰스 3세 국왕, 스코틀랜드 '메이 하이랜드 게임' 참석… 전통 킬트 차림에 왕실 팬들 환호 및 왕위 계승 논쟁 재점화
  • 스릴러(Thriller), 빌보드 차트 728주 진입 대기록 달성…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남긴 영원한 유산과 팬들의 뜨거운 환호
  • 비대면진료 이용자 10명 중 6명
  • UN, 세계인권선언 초기 초안 공개… “자유·평등·정의의 이정표”
  • 펠로시 전 의장, 오바마 생일 축하… “오바마 프레지덴셜 센터는 미국인 위한 웅장한 선물”
  • 1,000년을 버틴 거인의 품속… 세계 유일 '나무 속 바'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 베르티스, ‘MSD 헬스 이노베이션 서밋’ 수상…AI 기반 신약 타깃 발굴 기술 주목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대지를 캔버스로 삼은 예술… 로버트 스미드슨의 '스파이럴 제티', 시간이 완성하는 작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